(2)자원위기의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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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랍」산유국에 의해 선포된 석유무기화의 충격을 막아보려는 서방진영의 노력과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아랍」산유국측의 노력이 교차하는 가운데 74년의 새벽은 밝았다.
2월11일 미국주재 아래 열린 「워싱턴」의 13개 주요 석유소비국회의는 단합을 통해 「아랍」측의 콧대를 꺾고 석유무기란 하나의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허세를 부려보려 기를 썼다.
이보다 사흘 뒤 「아랍」산유국들(OAPEC)은「트리폴리」에서 회의를 열고 「워싱턴」회의에서 단합이 이루어질 경우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연초부터 시작된 이 팽팽한 대결은 서구 자국간에 노정된 불화로 원칙선언에 합의하는 데서 끝나버렸고 『만약 소비국들이 단결하는데 실패하면 30년대의 대공황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한 「키신저」의 음산한 경고만을 남겼다.

<불협화로 실패한 서구 반격>
「키신저」의 이 경고는 금년을 통해 세계경제의 혼란을 심화한 모든 책임을 산유국에 돌리려는 음흉한 흉계라는 비난을 산유국으로부터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석유무기화가 유발한 자원위기가 무한한 자원의 값싼 공급을 전제로 유지되어온 서구세계의 「풍요의 사회」에 전후 최대의 위기를 몰고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영국 보수당정권의 퇴진과 「이탈리아」의 「루모르」정권의 후퇴, 그리고 서구 자국이 거의 예외 없이 겪은 정권교체와 소수파내각 내지 약체연립정부의 구성 등은 모두 내정의 실패가 원인이었고 내정실패의 근인은 예외 없이 「인플레」와 함께 자원부족의 타격에 있었다.
앞으로 다시 한번 73년 말에 있었던 것과 같은 규모의 단유와 유가인상 파동이 올 경우 서구 자국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으리라는 자원위기설은 이제 이들 정부 지도자들의 인식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원위기는 제3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부존자원도 없이 서구식 산업체제를 모방해온 주변 국가들에도 심각한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끝없는 반정부 시위와 파업에 시달리고있는 인도, 「셀라시에」황제의 몰락을 가져온 「이디오피아」의 기아,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반정부활동 등도 본질적으로는 석유위기가 몰고 온 급격한 경제적 충격의 여파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제3세계에 속해있으면서도 경제상황의 중간지대적 성격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서구 자국보다 더 심한 타격을 받고있는 이들 국가군의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자원민족주의의 움직임에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다.
자원문제를 위기의 측면에서 보지않고 남북문제의 고질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로 보게 될 경우 74년은 전진의 해로 평가할 수도 있다.
즉 세계인구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그들이 갖고있는 유일한 재산인 자원을 부당하게 수탈당해온 제3세계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자원위기는 선진공업국의 예속화로부터 국내경제를 독립시키고 나아가서 처음으로 이룩한 국제무대에서의 다수집단으로서의 정치적 발언을 실력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최대의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4월 「유엔」자원총회가 채택한 77개 개발도상국의 「자원의 항구적 주권선언」은 큰 성과였다. 이 선언은 무엇보다도 서방강대국이 소유하고 있는 제3세계 안의 산업시설을 국유화할 수 있는 권리와 다국적기업의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를 천명함으로써 그와 같은 자구행위에 대해 국제적인 정당성을 명문화했다.

<자원의 항구적 주권선언>
이 선언은 또 「개발도상국들이 수출하는 1차 산품과 완제 또는 반제품의 가격과 부유국가들이 수출하는 공산품가격이 정당하고도 공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민족주의의 핵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와 같은 자원민족주의의 대두가 제3세계의 단결에 오히려 위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랍」산유국들이 선진 공업국들의 단합된 행동에 대항할 제3세계의 정치적 잠재력을 외면하고 제3세계와는 오히려 분리된 신생 이익단체로서 행동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초 「이란」측은 「아랍」산유국들이 석유가 인상으로 전세계에서 거둬들인 돈 중에서 특별기금을 마련, 인상폭만큼 출혈을 본 제3세계의 빈국들을 돕자는 소위 「팔레비」안이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2월18일 「라호르」에서 열린 회교국 회의에서는 유가인상으로 형제 회교국들에 지불능력을 4배나 능가하는 부담을 줬기 때문에 먼저 이들을 구제해야 된다는 의견이 나왔었지만 여기서도 구체적 행동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무력개입 위협도>
이와 같이 자원을 둘러싼 분쟁 쌍방은 서로가 자체 내의 문제를 안은 채 자원위기문제에 대해 평행선을 그어왔다. 연말에 있었던 미·서독, 미·불 정상회담에서 서방측의 대 산유국행동 통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듯하므로 새해부터 자원문제에 대한 서방측의 새로운 반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반격은 「프랑스」측의 유화적 영향력행사로 지난해 「키신저」가 주도하려다 실패로 끝난 대결형의 성격을 크게 후퇴시키고 산유국과의 「협조」를 앞에 내세우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측이 식량 무기화라든가 무력개입위협을 계속 들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자원위기 해소의 전망이 밝은 것만은 결코 아니다. <장두성 기자>
차례
①프롤로그
②자원위기의 쇼크
③서구 민주주의의 딜레머
④단결 다지는 「제3세계」
⑤후진국정치체제의 동요
⑥동서 「해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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