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북 스포츠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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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4년은 한국「스포츠」계에 큰 전기를 마련해 준 해였다. 최초의 남-북 전면대결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나 중공과 북한의 아주「스포츠」계 등장으로 시련을 맞아야 했다. 국내경기를 팽개치고 해외지향 일변도를 달린 축구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각종 경기의 불상사로 「스포츠」계가 안고 있는 부조리가 노출되어 국민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홍수환의 「프로·복싱」세계「타이틀」 쟁취로「팬」을 흥분시켰고 육군농구「팀」의 해체, 연·고전의 추태가 실망을 주기도 했다. 74년을 보내면서 한해의 명암을 거슬러 살펴본다.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북한「스포츠」는 본격적인 대결을 벌였다.
64년 동경「올림픽」「아시아」배구 예선대회로부터 72년「뮌헨·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전후 8차의 남-북「스포츠」대결이 이루어졌지만「테헤란」대회는 최초의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대결이었다.
지난 9월1일부터 16일까지 열린「테헤란」의 대회전은 양「팀」이 15종목 2백여 명이라는 대규모로 남-북「스포츠」총력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과는 한국의「원·사이드」승리로 끝났다. 「메달」서는 금16, 은16, 동「메달」15개로 금15, 은14, 동17개의 북한에 간 일발 차이의 승리였지만 금「메달」의 분포에서 북한은 사격에 편재했지만 한국은 역도·수영·「테니스」·사격·체조·육상·「레슬링」·「복싱」등 8개 종목에 걸쳐 고르게 우승, 「스포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입증했다.
그러나 직접 대결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완승을 거뒀다는 사실이 실질적이고 알찬 수확-. 「뉴델리」이후 두 번 패한 여자배구가 북한에 3-0으로 깨끗이 설욕했는가 하면 여자농구는 첫 대전에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었다.
북한에 패한 것은「복싱」·「레슬링」·탁구의 개인전뿐, 농구와 배구이외엔「배드민턴」·여자탁구·「펜싱」의 단체전을 휩쓸었고「레슬링」에서 2-1, 탁구개인전에서도 2-2의 승리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은 이렇듯 한국과의 직접대결에서 연패를 거듭한 데다가「복싱」판정불복, 여자농구의 기권 등 선수단운영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스포츠」외교 면에서도 추태를 보였다.
그러나「아시아·스포츠」계에서 북한의「데뷔」는 중공의 영향력을 받아 매우 화려했다.
「아시아」경기연맹 총회는 회원국의 표결로 한국을 탈락시키고 북한을 새로운 집행위원으로 뽑았고 각 경기단체도 북한을 정 회원국으로 맞아들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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