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경제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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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은 12일 제3세계가 주동한 경제헌장을 선진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채택함으로써 남북문제에 새로운 차원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법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제2차대전 후에 식민주의가 퇴조하면서 오늘의 선진국들은 식민체제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나 실질적으로 경제거래 면에 있어서는 구체제하의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후진국의 구체적인 반발은 62년『천연자원에 대한 항구주의 선언』으로 표현된 바 있으나 『개발의 60년대』를 지배한 원조의 철학 때문에 자원주권의 행사는 극히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졌었다.
한편, 선진국의 대기업들은 자원과 시장조건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서 다국적기업이라는 편리한 장치로 사태변화를 뚫고 나갔던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다국적기업에 대한 규제문제가 끈질기게 거론되어온 것이며, 이번 「유엔」경제헌장의 채택으로 그것이 매듭지어진 셈이다.
물론, 73년 말에 야기된 원유파동과 그 뒤로 격화된 자원파동은 다같이 후진국의 경제적자주권 행사를 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유엔」경제헌장은 사실의 진행을 공리화하는 뜻을 가지고 있음도 분명하다.
「아랍」 산유국들이 「메이커」지배 하에 있던 산유회사들을 접수해온 예에서 보듯이 이미 자원과 다국적기업에 대한 주권행사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이를 일반적인 경제헌장으로 추인한 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추세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의 경제헌장 채택은 이른바 자원을 가지고 있는 후진국의 의사표시와 일반원칙의 채택일 뿐, 그것만으로 자원문제나 다국적기업 규제가 완벽하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은 그들 나름대로 기존 이권을 최대한 보호하려 들것이며, 그러한 저의는 경제헌장 채택과정에서도 여실히 반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원문제 및 다국적기업 규제문제는 각국의 사정과 교섭력, 그리고 경제구조에 따라서 상이한 양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 경제적인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든 자원의 주요공급원인 후진국과 그것 없이는 공업력을 유지키 어려운 선진국 사이에는 이번 경제헌장 채택으로 대립관계가 격화되기 쉬운 상황이며, 그 여파는 결국 여타 후진국에 전가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른 후진국에 부담을 전가시킬 만큼 공업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자원주권을 행사함으로써 가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만큼 풍족한 자원도 못 가진 우리의 처지로서는 이번 「유엔」경제헌장 채택에 실로 착잡한 감회를 불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원문제가 파생시킬 장래 문제에 대처키 위해서 우선 싼 자원가격을 전제로 한 과거의 경험을 청산해야 한다. 그밖에도 ⓛ국내자원의 활용여지 ②자원절약형 산업 건설 ③자원외교의 강화 ④성장과 안정의 균형 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관련되는 문제점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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