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사 재검토의 원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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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만주에 소재하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한·중·일 3개국 학자의 공동 조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한 가닥의 전망은 최근 국내외 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 글은 72년 가을 동경대 사학대회에서 이 비문 탁본의 조작설을 발설, 학계 논쟁의 발단이 된 재일 고고학자 이진희씨가 공동 조사 실현 가능성의 소식을 듣고 피력한 요지이다. <편집자 주>
중국 길림성 통구에 있는 광개토왕릉비를 한(북한 포함)·중·일 학자들이 공동 조사하는 것은 두가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첫째, 공동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 착수의 시점에서 일본의 역사학계는 이른바 황국 사관을 뒷받침 한 지금까지의 왜곡된 사료 해역 자세를 백지화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민족간 또는 「아시아」 지역 단위로 긴장을 완화하는 길은 공동의 이익을 갖는 공동 관심사를 놓고 협력하는 것이 첩경인 만큼 한·중·일 학자들이 모임을 갖고 서로가 흉금을 털어놓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조사 그 자체에도 뜻이 있는 것이다.
원래 광개토왕릉비문 개찬 문제를 추적하게 된 동기는 과거의 정확한 사실을 규명하자는 욕망 이외에 한·일 역사학계가 과학적 형식을 띠면서도 특히 고대사에서 정반대의 견해를 내세우게 된 바탕이 무엇인가를 밝혀 내자는 의도가 있었다.
일본의 근대 사학은 한국사 연구에서 비과학적인 팽창주의의 선구 역할을 다했으며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없었다. 물론 최근에는 표현에 있어서 「정벌」이 「침략」으로 바뀌는 등 표면상 시정의 징후가 일부 나타나고는 있으나 그 기본적 바탕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역사학과 같은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견해차만을 갖고 논쟁을 해서는 상대방을 완전히 논파하기가 어렵다. 1백년의 뿌리를 갖고 방대한 조직을 과시하며 권위를 내세우는 오만한 일본의 역사학계와 대결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따라서 방법은 하나. 일본 사학계가 딛고 선 근본 사료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다루어짐으로써 어떤 해석이 나왔는가를 거슬러 따지는 사료 재검토뿐이다.
이렇듯 역사학의 기초에서부터 재출발하여 대상이 된 사료 하나 하나를 과학적(자연과학적)으로 재조사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으며 그 대상으로서 우선 광개토왕릉비와 칠지도를 문제삼게 된 것이다.
광개토왕릉에는 수묘인과 연호 등 아직도 연구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한·일 고대 관계사의 근본적인 시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선 비문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칠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금석학자·자연과학자(금속·암석분석)·사진전문가(촬영)등을 총동원, 각종 최신 기계를 이용하여 적외선 「뢴트겐」 편광사진을 찍는 등의 현대적 수법을 구사함으로써 부정키 어려운 과학적 증거를 포착한 다음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사관을 정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일본 학자가 사료를 거의 독점해 온 상태에서 탈피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일본 근대사학 뿐 아니라 오늘의 일본 사학자들의 자세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이점에서는 한국의 사학자들에도 문제가 있다. 광개토왕릉비와 칠지도의 경우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본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무리가 눈에 띈다. 여기서 벗어나자면 발상의 기본부터 바꾸어야 한다.
한·일 관계사의 경우 일본 자료 속에 들어가야 상대방을 안다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근본 자료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품어야 하겠다. 『일본이 마련한 씨름판』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씨름판』에서 사관을 재정립하자는 얘기다.
한국 사학자들의 글을 보면 좋은 자료가 많으나 「칼이 잘 안 드는 것」같다. 발상법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 사학자들의 학문적 체질이 풍기는 냄새를 알고 그 속에서 우리 입장을 시정해 가야 한다. 역자는 이러한 자세를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대당같은 민족주의 사관으로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한·일 관계사는 상대가 시정돼야만 우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투철한 민족 의식으로 사물을 정확히 보고 문제를 규명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광개토왕릉비의 현지 공동 학술 조사가 실현되자면 아직도 난관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이에 앞서 사전 조정 겸해서 한·일 학자들이 칠지도 명문을 공동 조사해 볼 필요도 있다. 일부 일본 학자들은 이 칠지도 공동 조사에도 관심을 보이고 구체화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 사학계 역시 적극적으로 일본측에 이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이진희 <재일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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