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수정에 나선|미국의 경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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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플레」를 미국과 국제 사회의 『공적 제1호』로 규정, 경기 대책보다 이의 진압을 앞세웠던 「포드」 행정부가 마침내 궤도 수정에 나섰다. 미연방준비이사회(FRB)가 전국 12개 연방준비은행 가운데 「뉴요크」 「필라델피아」은행에 대해 9일부터 재할율을 현행 8%에서 7.75%로 내리도록 허용했다. 71년 12월17일이래 만3년만에 처음으로 단행된 재할율 인하는 나머지 10개 연방 은행에 대해서도 곧 취해질 예정이며 금융계에서는 조만간에 7.5%까지 재인하 되지 않을까 점치고 있다.
재할율의 인하는 금융 자금의 공급 증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화 공급의 팽창은 미국의 경우 2∼4개월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된다.
물론 금융면에서 긴축이 해제되더라도 정부의 재정 지출이 그만큼 억제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포드」 행정부는 재정 긴축 방침도 바꿀 기미다.
75년도 연방 예산 가운데 50억「달러」를 절감하고 대세를 통해 민간 부문 구매력을 흡수하겠다던 좀 전의 태도를 표변, 최근 「사이먼」재무장관은 감세의 가능성까지 비쳤던 것이다.
「포드」 정부가 이처럼 「인플레」 재연을 각오하고 금융 및 재정 긴축을 다소 완화한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침체가 예상 이상으로 가속화 한 때문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실업율은 10월의 6%에서 불과 1개월만에 6.5%로 불어났다.
원래 정부가 예상했던 대로라면 실업율 6.5%는 내년 6월쯤에나 나타나야 했고, 그때는 이미 『공적 제1호』가 섬멸된 뒤이므로 마음놓고 경기 회복책을 구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대로 나가면 최소의 경우가 『75년 6월 현재 7.5%』(「그린스팬」대통령 경제 자문 위원장)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8%까지도 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45년이래 모두 5차례의 경기 후퇴를 겪었으나 실업율이 7%를 넘은 적은 한번도 없다. 6% 이상의 기록도 58년(6.8%)과 61년(6.7%)의 두 번 뿐인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월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에 패배했던 「포드」로서는 76년 11월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경기 문제에 눈길을 돌려야 했다.
일단 불황이 시작되면 현직 대통령은 누구나 『「후버」 악몽』 에 시달리는 게 미국의 정치 풍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업저버」들은 「포드」가 조심스럽게 「인플레」 유발적 경기 대책을 쓴 것은 「인플레」 문제에 대해 이미 제2방어선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즉 미국은 멀지않아 「오일달러」의 국제적 이용에 관한 「키신저」 구상에 따라 원유 수입 삭감·유류세 인상·유류 배급제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할 예정이므로 설사 금융·재정「사이드」에서 긴축을 완화하더라도 그 「인플레」 효과는 유류 통제에 의한 「디플레」 효과로 상쇄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실 「프리드먼」 등 「시카고」 학파는 물론, 「케인지언」이나 정부 관리들도 연율 10%의 「인플레」를 그냥 둔 채 경기 회복을 한다는 것은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따라서 「포드」의 이번 궤도 수정이 단순히 정치적 동기에 의해 취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말하자면 유류 통제 또는 경기 「무드」를 해치지 않으면서 「디플레」 효과를 줄 수 있는 다른 어떤 대책이 뒤따를 가능성은 상당히 큰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세계 경제 여건이 「포드」 정부의 정책 전환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설명도 있다.
불황의 심도는 미국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더욱 깊으며 비교적 내구력이 강한 서독 「캐나다」 일본조차도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
영국이 지난 9월 20일 연율 20%선의 「인플레」를 무릅쓰고 중앙은행 재할율을 인하한 이래 서독 「네덜란드」 「캐나다」 등이 잇달아 뒤따른 것은 경기 문제가 「인플레」를 돌볼 틈이 없을 정도로 다급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어쨌든 이로써 세계 경제의 주역은 총수요·경기 억제 정책을 본격화 한지 꼬박 1년만에 대선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국제 금리 정책 내지는 세계적인 경기 정책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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