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할 권리|신종선<성남 교회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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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1월29일 밤 동자동 판자촌에 불이 나서 많은 이재민이 생겼다. 이들 중 57가구 4백70여명이 본인이 시무하는 성남 교회에 임시로 수용된 적이 있었다. 이 지역 일대에는 이번 불이 난 곳 외에도 이와 비슷한 판자촌이 산재해 있다. 붉은 벽돌로 5, 6층을 올린 「빌딩」도 겉보기와는 달리 그 속은 판자촌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판자촌이 현대화한 것뿐이다. 판자촌은 도시의 상처요 치부이다. 수도의 관문 서울역 맞은편 이 일대에 이러한 판자촌이 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역 일대에는 하루에도 수십만의 교통 인구가 집산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수도 서울이 스스로 그 치부를 드러내어 그 많은 사람에게 그것을 구경시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다시 한번 이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 도동 어떤 판잣집에서 그 집 어른이 별세했다. 그러자 그 돌아가신 분의 두 다리가 창문 밖으로 쭉 뻗어 나왔다고 한다. 생존시 이분은 두 다리를 움츠리고 새우등처럼 하여 잠을 잤기 때문에 방 좁은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돌아 가시자마자 사지를 쭉 뻗었기 때문에 그만 두발이 문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판잣집에서는 많은 사람이 팔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실례를 더 들겠다. 우리 교회의 지역 사회 학교에 다니는 한 소녀가 현대식 판자촌에 살고 있다. 이 소녀는 국민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껌팔이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어머니가 병든 아버지와 나이 어린 동생들을 두고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는 껌을 팔아서 하루에 4∼5백원을 벌어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중 2백50원은 하루 방 값으로 당장 그 주인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집에서 쫓겨나든지 밤새도록 주인의 독촉을 받아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2백원으로 국수나 라면을 사서 너댓명의 식구가 요기를 하고 돈이 남으면 아버지에게 약을 사드리기도 한다. 이것이 판자촌의 상태이다. 판자촌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때문에 일기가 하루 이틀만 불순해도 벌써 생활의 위협을 느낀다.
이들에게는 교육이나 위생이나 교양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 바로 그것이 문제된다. 자유보다는 존재가, 인권보다는 먹는 것이 선결 문제가 된다.
여기에 오늘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있다. 이들 가난한 사람들도 대한민국 백성이다. 대한민국 백성이면 다 이 땅에서 자기가 설 땅을 차지하고 먹고 살 권리가 있다. 이 생존의 권리는 국가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다. 천부의 권리인 것이다. 자기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이들이 의당히 자기가 차지할 몫을 자기가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몫을 자기가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의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마태5‥6)고 했다. 그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태6‥33)고 명령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덕 가운데서 가장 수절한 것이며… 새벽과 저녁에 빛나는 별보다 더 미려하다』고 찬양했다.
오늘날과 같은 정치·사회의 상황 속에서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 정의의 실현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백성에게 그들의 몫이 의당히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 식량 위기 연료의 위기·생태학적인 생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표독한 북의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힘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권력자나 백성이나 간에 다같이 자기 몫을 자기가 차지하여 공평하게 사는 것이다. 옛날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외쳤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없이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있을진저』(이사야5‥8)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가장 위험한 짓은 자기만이 잘 살고자 남의 몫을 독점하는 것이다. 만일 이 나라에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부가 한 쪽으로만 몰린다면 「이사야」가 말한 것과 같은 저주가 언젠가는 이 나라 역사를 심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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