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에 76개 안건 땅땅|쫓기듯 서둔 일요 단독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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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정 사상 최고의 기록>
야당이 3일에 등원 할 것을 결정한 가운데 여당은 일요일인 1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과 부수 세법안 뿐 아니라 일반 의안까지 모두 76건을 무더기 처리했다.
이날 본 회의가 우리 의회 사상 최고 안건 처리 기록을 세우고 오는 10일까지 휴회를 결의함으로써 이번 정기 국회는 사실상 끝장이 났다.
정기 국회 회기는 오는 18일까지지만 각 상임위에는 야당 제안의 정치 의안 외에 별로 심의할 만한 중요 의안이 거의 없다.
개헌 특위 구성안을 요구하다가 11월 한 달간 원외에 나갔던 신민당 소속의원들의 등원을 불과 이틀 앞두고 여당이 계류 안건을 서둘러 처리한 것은 야당을 크게 자극, 불과 3주 남은 국회 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더욱이 「무조건 등원」한 야당이 대정부 질문을 요구했으나 여당은 이를 묵살하고 본회의를 휴회 결의까지 했다.
여당은 당초 1일에 세법을 포함한 37건의 의안을 처리하고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나머지 의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가 갑자기 방침을 바꿔 1일 하룻 동안에 모두 처리했다.
이 같은 국회의 초「스피드」 운영은 정국의 어떤 전기를 예상하고 이를 역산해서 앞당겨진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풀이도 낳게 했다.
이에 따라 의안 심의는 형식에 쳤으며 졸속 심의의 틈을 타서 일부 독소 조항이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삽입되었다가 물의를 빚자 삭제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의 난맥을 빚기도 했다.
보사위가 30일 하오 노동 조합법 개정안에 일부 사업체의 노조 결성권을 봉쇄하는 조항을 넣었다가 불과 4시간만에 법사위에서 삭제된 것이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새해 예산 규모를 정부안보다 3백억원이나 증액한 것도 우리 의회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다. 이런 처사는 국회가 왜 있으며 국회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의심마저 낳게 하는 일로 신민당에서는 행정부 시녀 역을 맡고 있는 여당의 자화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 조세 부담을 경감시켜야 하는 의회 본래의 기능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8년도 본 예산이 원안대로 통과된 것을 예외로 65년 이후 예산은 줄곧 삭감되었지 증액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지난 9월 20일에 문을 연 이번 정기 국회는 10월초 야당의 요구로 1주일간의 대정부 질문을 벌인 후에는 주로 여당 단독으로 운영되었으나 개헌 문제가 제기되어 여야간의 논란을 벌인 것은 특기할 만 하다.

<설 땅 잃은 신민의 등원>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가 대표 질문을 통해 개헌을 요구한 데 이어 야당은 국회에 개헌특위 구성안을 제안, 여당측과 협상하는 가운데 개헌 논의를 활발히 벌었다.
그러나 개헌특위 구성안 협상이 깨짐으로써 야당은 원외, 여당은 단독 국회 운영으로 제 갈 길을 간 것은 하나의 불행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최근의 학계·종교계·언론계 움직임과 관련하여 국회 운영의 변칙은 시국의 경새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올해 들어 8월초 단 10일간의 임시국회를 한 후에 소집된 정기국회가 평탄하지 못해 본회의를 불과 2주일 정도 밖에 열지 못한 것도 전과는 다른 점이다.
여당측은 상임위 활동을 이유로 2일부터 본회의를 휴회키로 했으며 계류 안건을 일괄 처리한 데 대해서도 『앞으로의 의사 일정을 야당과 합의하지 못 할 경우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등원을 과도하게 의식한 변칙 운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신민당 의원들이 등원을 해도 설 땅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 간부들 중에서는 야당 요구대로 3일 후에 대정부 질문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1일 낮 공화당과 유정회 간부들이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대책 논의를 한끝에 여당 방침이 확정됐다.

<정기국회 사실상 끝나>
여당측은 ▲야당의 본회의장 농성 ▲대정부 질문을 통한 개헌 공세 ▲상임위의 법안 심의 때 무제한의 정책 질의 가능성 등을 검토한 끝에 2일로 예정했던 예산안 통과를 하루 앞당기고 휴회 결의를 서둘렀다는 풀이다.
이로 인해 야당의 등원은 의미를 상실했고 또 다른 정치 공세의 구실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신민당은 동원해서 상임위에 나가 심의하나마나 한 하찮은 의안 심의보다는 새로운 원내외 투쟁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이택돈 대변인은 설명했다.
야당은 ▲국회의 변칙 운영에 관해 국회 의장단과 여당 간부들에 대한 정치 공세 ▲국회의사당 농성▲시위 등 원내외 병행 투쟁 등을 고려하는 듯하다.
이 같은 여야의 새로운 대치로 인해 야당 등원에 기대를 걸었던 국회 정상화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고 하겠다.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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