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8) <제자 김태선>|<제41화>국립 경찰 창설 (36)|김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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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부 합동 조사반>
박창길 검사 총살 사건은 검찰과 경찰을 다같이 난처한 입장에 빠뜨렸다.
경찰은 평소 반감을 가졌던 검사에게 보복 행위를 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었고 검찰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경찰의 손에 검사가 처형당했다는 불명예를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건의 수습이 잘못될 경우 경찰과 검찰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을 고려, 검·경·군 3부 합동조사반을 구성, 현지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합동조사반은 법무부 검찰과장 선우종원 검사 (현 국회사무총장)·대검찰청 정창운 검사·국방부 정훈감 김종문 중령·치안국 수사 지도과 김남영 총경 (현 서울 도봉구 수유동 55의 36 거주) 등 4명으로 구성됐다.
합동조사반은 다음해 1월초 서울역을 열차 편으로 출발, 밤중에 순천에 도착했다. 당시 김남영 총경은 치안국장 이호 (현 합동통신사 회장)로부터 『여·순 사건 수습 관계로 검찰과 함께 현지에 다녀 오라』는 지시만 받아 단순한 반란 사건의 사후 수습인 줄만 알꼬 전혀 사전 준비 없이 떠났었다.
이들은 순천 경찰 서장이 정해주는 여관방에서 함께 묵은 뒤 다음날부터 조사에 나섰다.
그때 순천 서장은 3·15선거 당시 마산 시장이던 손석래씨의 형 되는 손석공 총경이었다.
손 서장도 내용을 모르고 조사반이 도착하는 날 역까지 마중을 나갔었고 저녁에는 술자리까지 마련, 융숭한 대접을 했다.
다음날 아침 경찰서로 나간 선우 과장은 수사계 사무실을 모두 비우게 한 뒤 사무실 한가운데 책장 2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정 검사와 함께 앉았다. 양쪽 옆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김 총경과 김 중령이 각각 배석하듯이 앉게 했다.
검찰 측은 사찰계 형사들과 경찰간부들을 한 명씩 불러들여 박창길 검사 총살사건에 대한 진술을 듣고 진술서에 서명 날인을 받았다. 김 총경이 보기에는 검찰 측의 태도는 조사가 아니라 경찰을 피의자로 취급, 피의자진술조서를 받는 것이었다.
당시 검찰 측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박 검사의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할만한 사항이 없고 오직 경찰과의 마찰 때문에 빚어진 사건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우 과장은 처음부터 조사 각도를 수사 방향으로 잡아 이사건의 책임을 총살을 지휘했던 전남 경찰청 부청장 최천 총경에게 묻기로 했던 것이다.
경찰 측 대표로 파견된 김남영 총경은 이 같은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전 중의 조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김 총경은 김종문 중령을 불러『여보, 이게 무슨 합동조사요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니요』하고 불평을 털어놨다.
그러나 직접 이해 관계가 없는 군측 대표인 김 중령은 『나는 뭔지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시오』하고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 총경은 손 서장을 가만히 불러 『검찰 측이 박 검사 총살 책임을 경찰에 물으려 하는 것 같으니 이에 맞설 반증을 극비리에 수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합동조사반은 이런 식으로 약 2주간의 현지 조사를 끝낸 뒤 상경했다.
김 총경은 손 서장으로부터 받은 반증 자료를 가지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조사반과 함께 서울로 왔다.
조사반의 사실상 주체였던 검찰은 예상했던 대로 최천 총경에게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김 총경은 상경하는 즉시 이호 치안국장 사택으로 직행. 검찰의 일방적인 조사 경위를 설명하고 자신이 수집해온 반증 자료를 제출했다.
이 반증 자료에는 박 검사가 평소 사찰 경찰이 잡아 송치한 사상범들을 대부분 불기소 처분하거나 기소 유예 처분했다는 내용과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첨부돼 있었다. 다음날 합동조사반과는 별도로 경찰 측의 진상 조사 보고서가 작성됐다.
경찰 측은 여·순 사건으로 수백명의 무고한 경찰관들이 희생된 사실을 제쳐놓고 검사 1명이 죽은 것을 문제삼아 경찰에 책임을 묻는다면 희생당한 경찰 영현에 대한 모독이며 전 경찰관의 사기를 꺾는 처사라고 지적, 이 사건은 불문에 붙여야한다고 주장했다.
내무당국은 법무 당국과 여러 차례 회합을 갖고 대책을 논의한 결과 박 검사 총살 사건은 정책적으로 불문에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 당국은 이사건의 책임자로 지목했던 최천 총경이 그 뒤 경북도경 경무과장으로 전보 발령되자 대구지검에 사건을 이송, 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대구지검은 최 총경을 구속하겠다고 나섰다. 이 같은 보고를 받은 치안국에서는 경북도경 사찰과장 문인수 총경에게『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의 계획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경북 경찰국의 강경한 항의에 부닥친 검찰은 마침내 이 사건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 말썽 많던 박 검사 총살사건은 매듭을 짓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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