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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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성들이 나가 일하고 있는 어떤 분야와 비교하더라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가정부라는 직업이다. 일의 내용과 작업 시간에 한계가 없고 어느 일보다도 심한 대인 관계의 어려움아 따르기 때문이다.
가정부를 두고 있는 주부들 편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을 들을 수 있다. 1년을 있겠다고 와서는 한 달만에 가버린다던가 일을 너무 모르며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던가 하는 등의 불평이다.
일하는 사람과 고용하는 사람사이의 이와 같은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가정부」를 한사람의 직업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데서 빚어진다. 따라서 가정부들은 『이 집에서 나가겠다』는 통고 이외에 작업 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주장을 할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다고는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이 일하겠다고 약속한 기간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도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가정부를 하나의 직업으로 확립시켜보자』는 노력이 몇몇 여성 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가정부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꾸어 놓고있다. 가난한 많은 시골 소녀들이 상경하여 가정부로 일하고 있고 그들 중에는 「학대 사건」의 주인공이 될 만큼 불행하게 주인집을 만난 소녀들도 섞여 있지만 이런 봉건적인 고용 형태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YWCA·가사원·새 가정원 등 여성 단체에 등록되어 하나의 직업인으로 일하고 있는 가정부들은 현재 6백여명에 이른다.
전체 가정부들 숫자를 생각한다면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가정부를 고용하고 또 고용되는 형태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국민학교 졸업 이상에 건강해야하며 또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등 일정한 자격 기준을 세워 놓고있는 이들 가정부 모집에는 늘 많은 경쟁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서울YWCA의 경우 30명 모집에 3백50명이 몰려온 일도 있었다.
선발된 사람들은 1주일 동안 예절·위생·요리·기구 사용법 등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시간제 가정부를 의뢰해오는 가정에 일하러 가게된다. 이들이 하루 일의 대가로 받는 돈은 7∼8백원이며 YWCA의 경우에는 상오 9시∼하오 7시까지의 작업시간을 지켜주도록 신청 가정에 요망하고 있다.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가정부인들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된 분들이 많아요. 매일 일하러 나갈 경우 2만원 정도의 수입이 되는 셈이지요. 일의 양을 생각한다면 적은 액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취업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YWCA의 시간제 가정부 담당간사 이옥녀씨는 2백여명의 회원이 거의 매일 일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신청이 들어오고 있으며 요즘은 김장철이라 오히려 일손이 달리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중학 졸업생인 신경옥씨는 주변의 부인들에게도 이일을 많이 권해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전해준다. 주부 입장에서 보더라도 빨래 등을 모았다가 집중적으로 파출 가정부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가정부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상적이며 『그래서 이 직업은 전망이 좋은 것 같다』고 그는 밝게 웃는다.
새벽 4시에 잠을 깨어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고 겨우 1천원을 받아드는 일에 대해 이들은 아무 불평을 나타내지 않으며 『아이들과 함께 살며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정부를 구할 수 없거나 주택사정 때문에 숙식을 제공할 수 없는 수많은 가정들과 10대1이 넘게 몰려오는 이들 가정부 지원자들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사회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혜택이 가난한 소녀들에게까지 미친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정부에 관한 수많은 불상사는 많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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