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후세인과 부시父子의 악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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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미 연방수사국(FBI)본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차가운 피를 가진 살인자(cold blooded killer)'라고 표현했다.

후세인 대통령 역시 미국을 '사악한 어둠의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마지막 총알 한 발이 발사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결사항전 의지를 밝히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전쟁을 하면서도 적장(敵將)에 대해 은연중 존경심을 갖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부시와 후세인은 다르다. 이들은 서로 각자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대립을 넘어 감정적인 대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부시 가문과 후세인의 악연은 2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이란에서 팔레비 왕이 쫓겨나는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후세인이 아흐마드 하산 바크르 대통령으로부터 후계 지명을 받아 권력을 계승한 것도 바로 그해였다.

이 과정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올해 초 보도한 것처럼 "후세인을 만들어 낸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과 후세인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최고 밀월기를 맞는다. 80년 이라크와 이란이 전쟁을 시작하자 미국은 이라크의 생물.화학무기 개발까지 도왔다. 당시 부통령은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였다.

부시 부통령은 76~77년 CIA 국장을 역임한 정보통이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친이라크 정책 선택에는 부시 부통령의 역할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화근이 됐다. 이란과의 전쟁을 치러내면서 후세인은 중동의 패권을 잡겠다는 야심을 몰래 키워갔기 때문이다.

90년 쿠웨이트 침공은 그 결정판이었다. 당시 후세인은 미국을 오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밀월관계였으니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합병해도 미국이 용인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함께 밀월은 파경으로 끝나 버렸다. 레이건에 이어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는 곧바로 이라크에 대한 응징에 나섰고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 전역을 초토화해 버렸다.

그로부터 3년 뒤인 93년 4월 이번에는 이라크가 복수전을 시도했다. 걸프전 전승 기념식 참석차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쿠웨이트를 방문했던 부시를 암살하려고 한 것이다.

이 사건 때문에 아들인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후세인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그는 최근 후세인을 비난하면서 "우리 아버지를 암살하려고 한 사람"이라고 표현해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논리적인 대립은 한쪽의 문제점이 확인되면 금방 해소된다. 하지만 감정대립은 대부분 해법이 없다. 때문에 20년 이상 이어진 부시 가문과 후세인의 대립은 결코 간단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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