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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시대는 무엇을 뜻하는가|비평의 발달은 창작현실의 불모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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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의 세계문학이 창작보다 비평에 의해 보다 현상적인 지배를 당하고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였던 세계에서 가장 정력적인 비평가의 한사람인「알베레스」씨에 의해서도 다시 확인된바 있다. 씨가 확인하였다고 해서 사실판단에 무슨 대단한 권위가 첨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상당히 다른 자세의 비평들, 소위「신비평」을 중심으로 한 풍조를 대단한 비평풍조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확인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신비평」이란「알베레스」를 포함한 50년대 비평방법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유발된 새로운 현상의 이름으로서, 「롤랑·바르트」를 비롯한「신비평가들」의 탄생을 전후해서 세계문학은 차차 비평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세계문학계를 돌아보면 확실히 창작보다 비평의 우세를 느낄 수 있다.
「프랑스」처럼 우수한 문학평론가들의 이름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한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한스·M·엔젠스버거」, 「헬무트·하이센뷔텔」과 같은 시인, 그리고「귄터·그라스」와 같은 작가는 차라리 비평가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비평적인 작업에 열성을 보이고 있으며, 미대륙쪽을 보더라도 사정은 비슷해서 이렇다할 시인·작가는 없는 대신 각양의 비평적「에세이」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문단에도 최근 비평의 활발한 기운이 뻗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으로서 과거에 시평류의 단문이 비평문학의 주류를 형성하던 분위기가 점차 지양되고, 본격적인 비평서가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에 들어서 이러한 현상은 한층 가열된 감이 있다. 김윤식씨가 수권의 비평서를 연거푸 내놓은 데에 이어 역시 평론가 김현씨가『사회와 윤리』라는 저서를 펴내었고, 김용직씨도『한국문학의 비평적 성찰』이란 중후한 책을 상재하였다.
그밖에도 윤병노씨가『한국현대비평문학서설』『현대작가론』, 임헌영씨가『한국근대소설의 탐구』를 출판, 전후 어느 때도 볼 수 없었던 비평적 열기를 보이고 있다. 필자도 이즈음 『문학비평론』이라는 졸저를 끼워 넣어본 비평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문단에 난만해지고 있는 비평시대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문학비평이 활발하다는 것은 문학적으로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질문은 10여권의 저서를 얻게된 우리로서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 문학비평이 활발하다는 것은 창작현실과의 사이에 거리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현실과 비판과의 관계는 그 구조적 분열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더욱 첨예하게 대립되게 마련인데 문학비평논의 경우도 근본적으로 예외는 아니다. 말하자면 창작현실의 불모성이 상대적으로 비평을 발달시킨다고 우선은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학 비평론을 말할 때,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성향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창작가를 비난하고 비평가에 자존할 수 없는 문제점을 만나게 된다. 이 문제점이 바로 앞서 언급한 간과되어서는 안될 요소다. 그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비평의 비판적 측면만이 맹목적으로 강조됨으로써 발생하는 저 객관성에 대한 신화다.
이 객관성은 비평을 실증주의의 노예로도 만들고, 역사주의의 제물로도 삼으며, 전기주의의 완구로도 변형시킨다. 그러나 비평은 창작의「카운터·파트」이며, 결국 창작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참된 비평은 비평방법론의 심각한 자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영위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비평가들만이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의 비평문학은 아직도 자료일변도의 나쁜 의미의 학문성에 매달려 있거나, 혹은 피상적인 인상의 재단에 습관적으로 함몰되어 있다.
당연한 그 결과로써 신봉되는 것은 막연한 객관주의다.
그러나 비평은 결코 지나간 역사, 혹은 사실에 대한 객관적 실증이 그 최후의 미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평이 얻고자 하는 참다운 목적은 창작가와 더불어 좋은 작품을 쓰는데 있으며, 따라서 가장 고귀한 가치는 차라리 참된 주관의 획득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창작가들에게 참된 힘이 될 수 없는 비평은 무용한「고집」에 지나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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