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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국립경찰 창설 제41화(3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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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순 반란>
제주에서 일어난 4·3폭동사태는 정부가 수립된 지 두달이 되도록 진압되지 않고 또 하나의 끔찍한 사태를 불러왔다.
폭동진압이 늦어지자 정부는 그해 10월 여수에 주둔하고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를 제주에 출동시켜 공비토벌작전을 벌이도록 했다.
초창기 국방경비대에는 앞서도 말했듯이 좌익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경찰의 추궁을 피해 입대한 불순분자들이 많아 경찰과의 마찰이 심했고 공산당에 포섭된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14연대가 제주에 파견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남로당은 14연대의 남로당「프락치」지창수 상사에게 출동에 앞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지령했다. 반란을 일으켜 육지에서 제2전선을 형성, 제주도에서의 투쟁을 지원키 위해서였다.
당시 여순 반란을 지령한 총책은 남로당 특별공작 책임자이며 군적화 최고책임자인 이재복(46·평양신학교 출신)으로 그는 그 뒤 49년1월19일 체포돼 처형됐었다.
이재복의 반란지령을 받은 14연대 인사계 지창수 상사는 14연대 대전차포 중대장 김지회 중위와 홍순석 중위 등을 포섭, 음모를 꾸몄다.
제14연대는 48년5월에 새로 편성돼 여수읍 신월리(전 일본해군비행장 자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연대장은 일본군 대좌 출신인 박승훈 중령으로 그는 일본육사 제27기생이었다.
14연대는 48년10월19일 하오8시에 여수항을 출발, 제주도로 가라는 국방부장관과 전문지시를 받고 그날 아침부터 LST에 선적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승훈 연대장과 부연대장 이희권 소령(학병출신)은 국방부의 전문지시가 여수우체국을 통해 일반전화로 하달됐기 때문에 기밀이 누설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출항시간을 변경하자고 논의 한 끝에4시간을 연장, 밤12시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방경비대는 경찰과는 달리 자체 통신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전문지시는 일반민간우체국을 이용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저녁 14연대 장교식당에서는 출동대대의 환송회가 열렸다. 전 장교들은 환송회식에 참석했다가 7시께에야 헤어졌다. 연대장이하 참모들은 회식이 끝나자 다시 여수항으로 나가 선적작업을 지휘하고있었다.
김지회 중위와 지창수 상사 등 40여명의 반란군 주동자들은 당초 장교회식의 틈을 타 장교들을 모두 사살하고 여수를 점령하려했으나 장병들의 이목이 있어 부대출발 직전으로 거사시간을 늦추었다.
이 같은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있었지만 경찰은 물론 부대책임자까지도 눈치채지 못하고있었다.
이날 하오8시 정각 지 상사는 부대안 핵심 좌익분자 40명에게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케 하고 비상나팔을 불어댔다.
출동준비를 서두르고있던 장병들은 출발 신호인줄만 알고 지체없이 연병장에 집합했다.
지 상사는 이 기회를 이용,『지금 경찰이 우리를 습격하러 온다. 우리는 경찰을 타도하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죽는다. 우리는 제주도로 끌려가 동족상잔의 희생이 될 수 없다. 북조선인민군이 38선을 넘어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는 인민해방군과 합류하자』고 선동했다. 많은 사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반대연설을 하려던 하사관 3명은 즉석에서 지 상사의 총에 맞아 사살됐다. 지 상사는 겁에 질린 사병들을 향해『탄약고는 이미 점령됐다. 각자는 실탄을 최대한으로 휴대하여 미제의 앞잡이 장교들을 모조리 죽여라』고 외쳤다.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출동하려던 부대는 이렇게 반란군으로 돌변, 난동에 들어갔다.
이날 밤 5중대 주번사관이던 박윤민 소위(제6기생) 는 비상나팔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와 탄약고 쪽에서 신호탄이 올라가고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뛰어갔다가 사살됐다. 박 소위는 민간인이 부대 안으로 장작을 훔치러 들어온 줄 알고 탄약고 쪽으로 달려갔다. 당시 부대주위 주민들은 부대에서 장작을 훔쳐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박 소위가 탄약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 탄약고 쪽에서『누구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번 사관이다』고 대답하는 순간, 『쏴라』하는 소리와 함께「탕」「탕」하고 총성이 울렸다. 박 소위는 방광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같은 부대 조병모 소위는 대대부관 김정덕 소위(제5기생)가 반군사병들에게 매를 맞고 있는 것을 보고『왜 장교를 구타하느냐』고 말했다가 반군의 대검에 배를 찔려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대검은 김 소위의 배를 찌르고 등뒤까지 나왔다.
한편 여수항에서 반란소식을 들은 연대장과 부연대장 이희권 소령은 정보주임 김내수 중위(제4기생)를 데리고 연대로 달려갔다. 연대위병소를 무사히 통과한 이들이 탄약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 또『누구냐』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이 소령이 무심코『부연대장이다』고 대답하는 순간, 사격이 집중되어 정보주임 김내수 중위가 즉사했다. 반란주동 사병들은 대대막사를 뒤지며 『안 나오는 놈은 다 죽인다』고 위협, 숨어있던 사병들도 할 수 없이 나와 합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대 안에는 곳곳에 조명등이 비추고있어 반군들은 부대원의 움직임을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사살된 장교들만도 제1대대장 김일영 대위(제2기생)동 20여명에 이르렀다. 연대병력을 반군지휘체제로 편성한 반군3천여 명은 지 상사의 지휘아래 모든 차량을 동원, 깊은 새벽잠에 빠진 여수시내로 들이닥쳤다.<계속>【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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