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화지방덩어리 '팜유' 싼맛에 쓴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발렌타인데이 전날인 13일 오후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 젊은 남녀 500여 명이 모였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주최한 '열대우림을 보호하는 팜유 제로(Zero)' 캠페인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서는 팜유가 들어간 초콜릿과 들어가지 않은 초콜릿 중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초콜릿을 선택하는 블라인드 비교테스트가 열렸다. 테스트 투표 결과, 시민 512명 중 422명이 "팜유가 들어있지 않은 초콜릿이 더 맛있다"고 응답했다. 초콜릿을 비롯한 국내 가공식품 다수에는 팜유가 들어있다. 그런데 참가자 상당수는 왜 팜유 없는 초콜릿에 손을 들어줬을까? 이번 캠페인을 기획한 김우정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32·사진)은 식품업계가 팜유를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폭로했다.

▲ 김우정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

-팜유가 건강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나.

"그렇다. 사실 팜유는 식물성 기름이다. 하지만 식물성 기름이라고 해서 안심하기는 곤란하다. 팜유는 불포화지방산이 주성분인 다른 식물성 기름과는 달리 포화지방산이 많다. 포화지방산은 트랜스지방만큼 해롭지는 않지만 동맥경화 및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포화지방은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높여 혈관 건강에 해롭다. 실내 온도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다. 반면 불포화지방은 액체 상태라 혈관 건강에 이롭다. 초콜릿은 팜유로 인한 트랜스지방 위협이 크다. 트랜스지방은 액체인 식물성 기름을 고체 지방(경화유)으로 바꾸기 위해 수소를 첨가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초콜릿은 팜유가 경화유로 바뀌는 이 과정을 거친다. 트랜스지방은 포화지방과 마찬가지로 고혈압·동맥경화·심장병·뇌졸중 등 혈관 질환을 유발한다. 포화지방은 실온에서 굳은 형태를 보이며 동물성 식품이나 팜유나 코코넛유 같은 식물성 지방에도 많이 분포한다. 불포화지방은 생선기름·올리브유·들깨기름·옥수수기름·면실유·콩기름·홍화기름·참기름 등에 들어있다. 포화지방·트랜스지방은 되도록 적게 먹고 당과 불포화지방산의 섭취를 늘리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팜유는 상온에서 고체 형태로 있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서 혈액을 타고 돌면서 혈관에 쉽게 침착되기 때문에 동맥경화나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가공식품에 유독 팜유가 많이 쓰이는데.

"그렇다. 최근 녹색소비자연대가 서울 소재 대형마트 6곳에서 가공제품 8품목, 618개 제품의 '팜유' 함유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시판 스낵·라면·초콜릿 10개 중 7~8개는 건강에 좋지 않은 '팜유(팜오일)'를 많이 함유했다. 팜유는 다른 유지에 비해 가격이 싸다. 따라서 대량 생산하는 가공식품, 특히 초콜릿을 만들 때 주원료인 카카오버터 대신 팜유를 넣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식품업계는 '팜유가 바삭한 맛을 내는데 편리하며 상온에서 오래 보관이 가능해 제품 보존성이 좋아진다'는 입장이다. 우석대 정문웅(외식산업조리학) 교수에 따르면 포화지방을 쓰면 상온에서 고체 상태를 유지하고(초코파이·초콜릿), 빵의 볼륨감을 높이고(크루아상), 산화(酸化)를 억제(튀김류)할 수 있기 때문에 식품업체들이 즐겨 사용한다. '팜유'가 아닌 '식물성유지'로만 표기돼 팜유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제품도 많았다. 이런 팜유가 소비자들이 접하는 가공식품의 상당부분에 포함되면서 실생활에서 팜유 섭취를 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앞으로 식품업계는 식물성유지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해 온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팜유가 없는 식품을 구매해 가족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제품 구입 시 팜유 함유 여부를 알려면?

"현재 식품에 사용된 식용유지의 종류를 표시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팜유가 '식물성 기름(유지)'로 표시된 식품이 많다. 하지만 유럽 규정이 개정돼 올 12월부터는 그 종류를 표시해야 한다. 벨기에는 포화지방산과 팜유의 과다 섭취를 경고했다. 벨기에 최고보건의회는 포화지방산과 팜유에 대해 '포화지방산(AGS-ath)의 과도한 섭취는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등 건강에 유해하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보건의회는 포화지방산 섭취량을 총 열량 섭취량의 8% 미만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팜유는 이렇게 유해한 포화지방산을 40% 이상 함유하고 있다. 과자 및 제과류, 조리식품, 피자, 샌드위치, 마가린 등에 팜유가 많이들 있다. 버터·크림 같은 일부 유지방 역시 포화지방산을 과량 함유하고 있어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식품 표시가 건강한 식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표시 기준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

▲ 발렌타이데이를 하루 앞둔 13일 시민 참가자가 팜유가 든 초콜릿과 없는 초콜릿을 먹고 맛을 비교하고 있다. [사진 녹색소비자연대]

-팜나무를 심기 위해 열대림이 파괴되고 있다는데.

"인도네시아의 팜유 경작규모를 살펴보면 1968년에는 12만ha였으나 1978년에 25만ha로 10년 사이에 2배 정도 늘었다. 1998년에는 300만ha로 78년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농장 규모가 확대됐으며 2005년 600만ha, 2010년 840만ha에서 팜유가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여년 사이 적어도 매년 40만~50만ha의 열대림이 팜농장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년 서울 면적의 6~7배에 달하는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팜유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조림 대신 경제성이 높은 팜나무를 심었고 더 이상 나대지를 확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는 팜농장이 늘어나는 것 만큼 열대림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개간하는 열대림이나 초원의 소멸인해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현재보다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이오원료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자체 온실가스의 양은 화석연료보다는 적지만 바이오연료 수요증가로 인한 산림파괴 등으로 더 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팜유의 경제성이나 범용성에도 불구하고 팜유가 열대림을 파괴하고 이로 인해 오랑우탄을 멸종위기에 빠뜨리거나 기후 변화의 주범이 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UN에서도 '오랑우탄의 마지막 설 자리'라는 보고서를 통해 산림훼손을 경고했다. 오랑우탄의 최대서식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열대림은 팜유 생산을 위한 벌목으로 2022년도에는 숲의 99%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으며 그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랑우탄은 하루의 90% 이상을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그 숲에서 먹이를 얻는데 현재와 같은 속도로 산림이 훼손될 경우 앞으로 20년내 오랑우탄은 멸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팜유를 대체할 방안이 있나.

"식물성 기름인 콩기름, 옥수수기름, 참기름, 들기름 등에는 콜레스테롤이 없으므로 소기름, 돼지기름, 버터, 팜유 대신 활용하는 것이 좋다. 팜유는 현재 스낵, 라면, 튀김류, 초콜릿 등을 제조하는 업체에 주로 공급되며 일반 가정용 시장은 아직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는 가공식품을 고를 때 반드시 제품 뒷면을 확인해 팜유가 포함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식품표시를 확인하고 팜유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팜유 소비를 막으려는 해외 사례도 있나.

"있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식품에 사용되는 팜유를 건강에 더 좋은 재료로 대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팜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기기사]

·[포커스]3대 비급여 대책 내놨지만 난제 여전 [2014/02/16] 
·시장형실거래가제 결국 폐지…병·의원 경영 악화 심해지나 [2014/02/17] 
·"포화지방덩어리 '팜유' 싼맛에 쓴다" [2014/02/17]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