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유쾌한' 드라마가 그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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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치한 드라마를 왜 보죠?" 제작진과 시청자를 싸잡아 무시하는 이 질문은 지금도 계속 중이지만 그 비아냥에 맞서 "그런 유치한 질문을 왜 하죠?"라고 자신감 있게 대응할 수 없는 현실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에서 드라마만큼 인기 있는 장르는 없다. 각 방송사마다 '드라마 왕국의 자존심' 운운 하지만 실은 대한민국 자체가 드라마왕국이다. 지난주 시청률 조사(TNS미디어코리아)만 봐도 대번 알 수 있다. 10위권 안에 무려 8개가 드라마다.

'올인''인어아가씨''야인시대''저 푸른 초원 위에''태양 속으로' 'TV 소설 인생 화보''무인시대''아내'. 어쨌거나 많이 보도록 만든 건 시청자의 욕구를 잘 읽어낸 결과 아니냐고 물으면 "볼 게 없으니까 보는 거죠"라고 차갑게 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자. 볼 게 왜 없을까. 책을 보면 되고 가족의 얼굴을 보면 되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아도 될텐데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TV를 끄고 책을 읽는 것이 낫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책읽기의 괴로움'을 겪은 성인들이 TV를 보고도 책을 읽은 효과의 반(4분의1도 좋다) 정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TV를 추방한 사람들은 '책은 생각하면서 보지만 TV는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고 말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과 세상을 거기 대입시켜 보는 건 독서의 효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인시대'를 즐겨 본다는 청년은 회사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직장상사를 떠올리며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고 고백한다.)

"모든 드라마의 주제는 사랑이며 그 사랑은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다." '명랑소녀 성공기'의 작가 이희명씨의 특강에서 들은 말이다. 맞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루도록 하는 게 드라마다. 시청자의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주는 게 드라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 무언가 맺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드라마의 역할이다.

TV를 떠난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보다는 "끊긴 끊어야 할텐데" 하면서도 줄담배 피우는 심정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영혼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드라마를 만들 계획을 세우기 바란다. 계몽주의 드라마를 만들라는 주문이 아니다.

'올인'에서 주인공이 멋진 차를 타면 그 차를 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의 가치관(결국 작가와 연출가의 가치관이다)과 문제의식을 은근히 닮고 싶도록 배려하는 일은 이를테면 영혼의 PPL(간접광고)이라고 할 만하다.

사전에서 '유치하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형용사가 '유쾌하다'이다. 그만큼 가깝다. 이런 질문을 받아 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그런 유쾌한 드라마를 언제 어디서 하죠?"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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