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숨진 일가동반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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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영등포경찰서는 생활고에 지쳐 5남매와 동반자살을 하려던 실직가장 박형재씨(40· 서울영등포구화곡동208)를 살인죄를 적용, 구속했다.
박씨는 지난 7일 하오11시쯤 집 안방에서 맏아들 용식군(15·인쇄소직공), 맏딸(13·국교생), 2남(10·국교생), 2녀(8·국교생) 3남(4)등 5남매에게 차례로 쥐약을 먹이고 자신도 쥐약을 먹은 뒤 구공탄 불을 방안에 옮겨다 놓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다음날인 8일 상오6시쯤 맏아들 용직군만 숨지고 나머지 4남매와 자신은 살아남았다.
박씨는 지난 2월중순 극동건설 동대문구 신설동 지하철 공사장관리주임으로 있다가 인부추락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박씨는 실직후 방1간·부엌1간뿐인 4평짜리 비좁은 집을 보증금2만원에 월4천원씩 세내어 살며 동네 꼬마들을 상대로 한 구명가게를 벌였으나 하루에3∼4백원 어치도 팔리지 않아 생활이 안돼 지난달 10일부터는 부인 양인복씨(38)가 청진동으로 식모살이를 나가고 혼자서 집안을 돌봐왔다.
박씨는 사고당일 쌀이 떨어져 아침부터 굶은데다 아이들이 『엄마 보고싶다』고 울며 보채자 동반자살을 계획했으나 쥐약을 살 돈이 모자라 1봉지만 겨우 구해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자신도 먹었으나 쥐약의 양이 적어 약을 먹은 아이들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자 다시 부엌에서 연탄불을 방안에 옮겨 놓고 죽기를 기다렸다는 것.
국민학교를 졸업, 극동전설에 들어가기 전까지 「리어카」 행상을 해온 박씨는 평소 착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어려운 집안에서도 가정교육만은 엄하게 시켜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이면 거역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사고 당일도 박씨가 약을 주며 『먹고 모두 드러누워 눈을 감으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모두 그대로 따르고 막내인 3남(4)만이 눈을 뜨고있어 연탄불을 들여오게 됐다고 했다.
한편 식모 살이 나갔던 부인 양씨는 사고소식을 전해듣고 8일하오 집으로 돌아와 『식모 살이를 해서라도 살아보자고 했는데 이게 무슨 끌이냐』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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