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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양분…껍데기만 남은「한국기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기원의 개혁을 요구하고 투쟁을 벌여온 전문기사들이 지난5일 한국기원을 탈퇴함으로써 한국기 계는 끝내 양분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조남철 8단 등 탈퇴기사 48명은 이날로 대한기사 회(가칭)을 발기하고 임시사무소를 광지기원(신신 백화점 건너편 (75)4709)에 두었다.
기사연구수당 인상, 퇴직금제도 확립, 기사들의 운영참여 등 3개항을 내건 이번 기사들의 요구는 바둑을 업으로 삼는 기사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절박한 호소였다. 이러한 호소를 현 이사 진이 외면했기 때문에 기사들은 오래 묵은 불만이 폭발, 정든 한국기원을 떠나고 만 것이다.
탈퇴한 기사들은 한국기원소속기사 66명 중 48명. 고단 자·각 기전「타이틀」보지 자 등 인기기사가 총망라돼 있다. 또 현재 잔류기사 중에는 지방에 있거나 군복무관계로 연락이 안된 경우가 많아 탈퇴기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이번 바둑계 양분사태는 그 요인이 근본적으로 현 이사 진에 있는 것 같다. 재단법인 한국기원은 이사들의 소유재산이거나 전유물이 아니다. 전체 바둑인의 공용물이며 그 주체는 오히려 전문기사들이다.
이러한 기사들의 해묵은 요구를 이사들이 묵살해 버릴 이유가 없다.
수당인상 등은 재정형편이 허락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사들의 운영참여까지 막겠다고 고집할 권리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바둑을 아끼는 사람들의 지배적 견해다. 즉 재단이 이사들의 것이 아닌 이상 기사들에게 운영을 맡겨버리면 그것으로 분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기사들의 요구가 공식적으로 전달된 다음 이사들은 무성의하게도 5일까지 한번의 대책회의도 가지지 않았다. 최영근 이사장은 5일 것 이사회가 끝난 다음『기사들의 요구조건은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들어주겠다』고 말하면서도『한국기원과 기사들은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생활을 책임질 의무나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하고 애초에 생활보장을 약속하고 단을 주지도 않았으며 유도회가 단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론을 폈었다.
이제 한국기원은 그 실질적 주체인 전문기사들이 대부분 빠져 나옴으로써 빈 껍데기만 남게됐다. 탈퇴 기사들은『바둑을 생명으로 알고 젊음을 불태운 우리가 왜 한국기원을 버렸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다.
『우리는 분열을 원치 않는다. 한국기원은 전체기사와 바둑「팬」, 그리고 앞으로 배출될 기사들의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한국기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현 운영 진이 있는 한 바둑을 그만두더라도 합칠 수는 없다』고 탈퇴기사들의 결의는 단호했다.
한국기원·대한기사 회와 같은 양분은 한국 바둑계로 보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 상태로서는 양측이 타협책을 찾을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 이제 바둑계를 한데 뭉칠 수 있는 길은 현 이사진의 총 사퇴로 과감한 개혁을 하는 길뿐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또 전문기사들도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좀 더 헌신적으로 노력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탈퇴기사> (대한기사 회)
▲8단=조남철▲7단=김 인 윤기현 정창현▲6단=김재구 조훈현▲5단=김맹영 김수영 강철민 하찬석 노영하 유건재 이봉근▲4단=김명환 최창원 김학수 백흥수 정동직 백욱태 권경언 천풍조 김동명 유병호 김희중 홍종현 양상국 전영선 서봉수▲3단=양건모 이강일 이준학 이동규▲2단=이인상 이상철 한상렬 박종렬 백성호 서능욱 김좌기 김덕규 장두진 정수현▲초단=이기섭 윤종섭 김봉근 차민수 강훈 김수장 (이상 48명)

<잔유 기사> (한국기원)
▲5단=김봉선 고재희▲4단=김성훈 심종식▲3단=이일선 김태현 고재봉 ▲2단=박진환 김정림 (이상 9명)

<미확인 기사> (「군」은 군복무 중,「지」는 지방거주 기사)
▲3단=장수영(군), 최욱관(군) ▲2단=김판율(지), 강문철(지), 김윤태(지) ▲초단=고광낙(지), 염찬수(지), 김호웅(지), 김일환(지) (이상 9명)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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