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비상|침체 요인의 긴급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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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수출침체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수출 선행 지표인 신용장 내도가 더 빠른 속도로 감소 추세를 보임으로써 내년도 수출 전망에까지 암영을 던져 주고 있다. 더욱 큰일은 이처럼 수출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교역 조건까지 악화되고 있어 무역수지의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지난 10일 현재 수출 집계가 35억6천7백38만「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63.7%의 증가율을 기록, 올해 목표(45억「달러」)대비 79.3%의 실적율을 보이고 있으나 수출 신용장 내도액은 작년 동기보다 27.7% 증가에 그쳐 수출 실적보다 오히려 1억5천만「달러」나 미달했다.
신용장 보유가 수출 실적보다 최소한 10% 이상 항상 앞서야 수출의 지속적인 신장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신용장 내도가 수출 실적에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수출 수요가 점점 줄어 신장 여력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규 신용장 내도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그런대로 63.7%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작년도 이월「오더」가 많았던 점에 힘입은 것이며 하반기부터는 이월분 소진에 따라 수출 침체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수출의 대종품인 7대 공산품의 경우만 보더라도 ▲직유류는 수출 37.5% 증가에 신용장 내도는 7.7%감소 ▲전자제품은 수출 72.2%증가에 신용장 증가는 12.2% ▲신발류는 수출 1백2% 증가에 신용장 증가는 19.4% ▲가발 수출 4% 감소에 신용장 증가는 12.2% ▲합판은 수출 22.5% 감소에 신용장은 21.1%감소 ▲선박은 수출 1백33.7% 증가에 신용장은 43.6%의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즉 수출실적 증가율과 신용장 내도간에 상당한「갭」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수출 신장은 어렵다는 진단 밖에 내릴 수 없다.
다만 철강판만은 수출 실적 1백14.6% 증가에 신용장이 1백14.5% 증가로 수출 신용장 내도 모두 호조를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철강판도 수출 수요가 격감, 지난 23일 현재 1억1천5백만「달러」로 단일 품목으로 최고의 실적을 올린 연합 철강의 경우 수출 가격이 4·4분기에는 10%가량 떨어질 전망이고 그나마 해외수요가 갑자기 줄어 수출 신장에「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원료인「핫·코일」값이 계속 올라 t당 2백21「달러」지만 철판의 수출가격이 2·4분기의 t당 2백90∼3백「달러」에서 3·4분기에는 3백30∼3백40「달러」로 상승, 채산성도 좋았으나 4·4분기에는 다시 3백「달러」수준으로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이는 소비국의 재고 과다와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빚어지고 있는 현상인데 비단 철강판 뿐만 아니라 여타의 품목들도 이 같은 현상이 속출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최근의 수출 동향에서 두드러진 움직임은 해외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외에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출 가격의 하락이 병진되어 비싼 원자재를 비축하고 있는 업체일수록 해외수요에 응할 수 없는 가격 불경기를 상당히 겪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면방업계가 각사 사장회의를 열어 대미 수입원면 가격의 인하 교섭을 벌이기로 한 것은 좋은 예다.
현재 면방업계가 수입계약을 맺은 원면은 약 90만표에 이르고 있는데 계약 가격이「파운드」당 50「센트」로 최근의 국제 시세인「파운드」당 50「센트」보다 20%나 비싸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수출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원인은 주시장인 미·일 지역의 수출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비싼 원자재 재고의 과다로 수출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는데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출 여건의 불리는 상품 교역 조건의 악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7월말까지 순 상품 교역 조건은 22.7%나 악화됐는데 1·4분기 중에 작년 동기비 10.8% 떨어진 데 비해 2·4분기에는 17.5%로 폭이 더욱 커지는 추세에 있다.
이로 인해 상반기중의 무역 적자 10억2천2백만「달러」가운데 상품교역조건 악화로 일어난 것이 66.3%에 해당하는 6억7천7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수출 채산성 역시 악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고 수출의 감소율만큼 수입이 따라서 줄지 않기 때문에 무역 수지의 악화를 주축으로 한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본다면 수출의 침체가 채산성의 악화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수출의 급격한 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출 채산성의 악화만이라도 제거할 수 있는 지원 조치의 강구가 선결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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