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낭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끝없이 뻗은 8차선 12차선의 고속도로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집채만한 승용차들, 시뻘건「스테이크」를 식성 좋게 먹어대는 도시의 점심 고객들, 집 앞마다 수백평 수천평씩 깔린 시원하고 부드러운 잔디밭, 도시나 시골 어디가나 구석구석 쌓여 있는 아직도 쓸 만한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기계 제품의 폐품처리장.
이 모두가 미국 사회의 엄청난 선진과 풍요의 상징으로 미국인의 자랑이고, 우리의 선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의 제전을 보면 볼수록 가벼운 분노 같은 것을 금할 수 없다.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는 대부분 자동차들의 기능이 직장에서 수십「마일」떨어져 살고 있고 한 사람의「샐러리 맨」을 출퇴근시키기 위해서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 교통수단의 적절한 개발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더우기 미국인의 이런 식의 기름소모가 전세계 유류 소모량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한다니 말이다.
요즘 늦가을 서울거리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반소매 난방「샤스」차림의 미국인, 이도 역시 겨울에는 과잉 난방, 여름에는 과잉 냉방하는 미국인의 생활화된 낭비벽의 희생자임이 틀림없다.
피가 떨어지는 덜 익힌「스테이크」에 약간의 구토를 느끼는 것은 채식 민족의 편견인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이 하루 필요로 하는 최소 열량이 2천「칼로리」정도인데 미국인이 섭취하는 하루 평균 열량이 1만「칼로리」가 넘는다니 남아 돌아가는「칼로리」가 아깝기만 하다. 「아프리카」나 인도 등지의 기아 상태를 생각할 때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정원의 잔디 역시 마찬가지다. 한 주택 단위의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료가 적어도 수십 내지는 수백㎏이 될텐데 이것을 모두 세계 여타 지역의 식량 증산에 전용할 수 있다면 식량문제 해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주말에는 풀 깎이로 정원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수많은 가장들의 여가도 좀더 생산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미국인들은「세계 최고의 낭비자」라는「포드」대통령의 반 비판, 반 자랑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그들은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불과 20분의1밖에 안 되는 이들이 세계 자원의 4분의1 이상을 소모하고 있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엄청난 물질적 혜택이 그들을 보다 더「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지도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엄청난 기름의 소모는 동시에 엄청난 대기오염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차지한다 해도 이들이 일생의 엄청난 부분을 운전대 잡고 앞차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데 낭비하고 있으며, 남아 돌아가는「칼로리」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대증·고혈압 등으로 고생을 하며, 다듬어 줄 것을 강요하는 잔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의 압력은 터무니없이 가중되는 것이다.
하나의 사회나 국가에 있어 부의 분배에 있어서의 불균형이 극도화 되어 사회 정의의 실현이 요원해 질 때 그 사회나 국가는 파열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인구의 폭발, 식량의 부족, 기타 자원의 결핍, 공해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국가와 민족의 단위를 초월한 상호 의존적 협력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인구를 제한하고 경제 성장이 저해되더라도 공해산업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공업 선진국들의 호소도 이 엄청난 낭비가 존속하는 한 결코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사회 정의의 개념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여수 성균관대교수·철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