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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1∼2년 전 개헌론」의 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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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향후3∼4년 중요한 기간>
『여당 방침은 어떤 것인가?』-. 25일 하오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여당수뇌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김용태 공화당 총무로부터 신민당이 내놓은 개헌특위 구성안 등 정치의안 제출배경과 내용 등을 설명 듣고 여당의 대응책을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해 김 총무는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 아래 대책을 마련하고 있읍니다』고 답변.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기본 입장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박대통령이나 김종필 총리 등에 의해 밝혀져 왔지만 신민당의 개헌 주장 속에서 이날 개헌불가 방침을 재확인 한 셈이다.
개헌할 시기가 아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여당 쪽에서 내세우는 개헌 반대 이유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개헌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오면 개헌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개헌을 필요로 하는 때가 언제겠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화당의 한 고위간부가 지난 21일 『다음선거(78년)를 1, 2년 앞두고 개헌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한 발언이다.
이 간부는 『지금은 개헌할 시기가 아니다』고 전제한 후 이같이 말했는데 「선거를 1, 2년 앞둔다」는 시기는 「향후 3, 4년」이란 얘기가 되며 여당권 안에서 『앞으로 3, 4년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해 오는 것과도 앞뒤가 맞는 얘기다. 여당 간부의 이같은 개헌논의 시기에 관한 발언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그 하나는 대야 당용의 전략적 발언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 견해다.
신민당은 김영삼 체제가 들어선 후 집요하게 개헌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에 개헌심의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정치문제를 원내에 끌어들이기로 한 여당의 방침에서 볼 때 개헌 특위안은 하나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야당무마용 기구로 간주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선거제도와 관련된 것 같기도 하다는 해석.
지난날 거의 모든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고치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여당 간부들간에 선거제도 얘기 끝에 『그것은 선거를 1, 2년 앞두고 생각할 문제』라는 말이 튀어나온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광의의 선거제도는 헌법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개헌논의 시기를 다음 선거전으로 잡은 것은 그럴싸하다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개헌이 거론된다면 현행 헌법 가운데 대통령·행정부·국회 등 권력구조에 관해 부분적인 손질도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평생 대통령 하실 분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4일 예산시정 연설에서 『앞으로 4, 5년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고 김종필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평생 대통령 하실 분은 아니라고 했다.
김 총리는 정운갑 의원(신민)이 지난 8일 대정부질문을 통해 개헌할 용의와 시기를 물은데 대해 『솔직한 얘기가 그 어른이 평생 대통령 하실 분 아니다. 이 나라를 건설해 놓고 나라를 통일할 수 있는 국력이 배양되고 그런 기초라도 닦아 놓으면 소원이 다 풀리겠다고 생각하는 애국하는 마음에서 지금 저 고난을 혼자 맡고 있다』고 답변했던 것.
공화당의 이효상 당의장 서리는 얼마 전 「스나이더」주한미국 대사와 대화하는 가운데 『앞으로 3, 4년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여당 간부는 『지속적 안정이 목표인데 어떻게 안정을 기하느냐가 문제다. 개헌을 해야 안정이 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안정을 위해서는 개헌할 수 없다는 얘기도 있다』고 실토하면서 『민족적인 기질이 문제다.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내라 하고 둘을 주면 셋을 바라는 것이 야당이다. 야당은 자유나 민주면 다라는 식이지만 자유방임시대는 아니지 않는가』고 야당관을 말했다.
유정회 소속의 구태회 무임소 장관은 『신민당의 새 당수가 된 김영삼 총재의 체면을 세워 주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시국을 끌고 나가자는데 다수당의 고민이 있다』고도 했다.
『야당이 의원직을 내놓아 선거를 다시 할 경우 김영삼 총재는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한 민병권 유정회 총무의 말이나 많은 야당의원과 일부 여당의원까지 이다음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선거에 선뜻 나설 사람이 있겠느냐고 회의하는 것 등이 모두 시국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당권의 이러한 발상 속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꼭 집어내기는 쉽지 않으나 어떤 맥이 그 속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신민당 내 선단은 「화요회」>
신민당의 김형일 원내총무는 『나도 다음 선거전에 개헌논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견을 전제로 「임기보장론」을 말했다.
김 총무는 야당의 개헌 주장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트자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개헌경우 헌법기구의 현 임기를 부칙으로 보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성급한 얘기」라는 야당 자체 안의 비판이 있다. 한 야당간부는 『김 총무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사견일지라도 현임자의 임기문제는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
개헌 논의에 관한 한 지금 신민당 안에서는 대체로 강경론이 우세하달 수 있다. 그중에서 화요회 「멤버」들이 드센 편인데 이 모임의 대표인 정일형 의원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일단 원내에서 투쟁하고 안되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
개헌논의는 내주 국회운영위에서 다룰 개헌특위 구성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간에 격렬해 질 조짐이다.
여당은 25일 정부와의 연석회의에서 특위안을 들어주지 않기로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야당은 이의 관철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여당측은 우선 특위안의 명칭과 내용이 헌법 및 국회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를 들어 의안성립 자체를 운영위에서 문제삼을 계획이어서 난관은 첩첩이다.
만일 야당이「국회 헌법개정 기초심의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란 긴 이름의 특위안에 대해 명칭과 내용을 대폭 수정한다면 여당측이 시사하고 있는 「헌법제도 연구특위」로 절충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일동 통일당 당수가 특위안을 놓고 여야가 야합할 가능성을 경고한 것처럼 원외의 개헌주장 예봉을 꺾을 절충안이 현 단계에서 나올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이 특위안의 처리 결과에 따라 정국의 기상이 결정될 것은 뻔한 일이다.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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