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당분자 색출·공작원 양성 등 담당|남북적 회담 등 수행원의 80%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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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괴의 이른바 국가정치보위부는 73년5월 사회안전부의 정치보위국을 분리 독립시켜 신설한 주석 김일성 직속기관으로 북한내의 간첩검거, 반당·반국가음모행위자 색출검거, 공작원양성 및 남파 등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국가정치보위부는 중앙조직으로 부장 김병하 밑에 사업담당부 부장, 당사업담당부 부장을 두고 예산지도국, 대외국(대외반탐사업) 등 l6개국과 국내외 무전을 도청하는 기술정보처 등 4개처로 돼 있으며 각도·시·군에 지방조직을 두고 각 기관에 1∼2명씩의 지도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이밖에 군내부에도 중대급에 이르기까지 2∼4명의 지도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정치보위부원들은 남한에 관한 각종 정보수집, 간첩활동의 감시, 남한요원숙소에 대한 도청 등을 하고 있으며 남북조절위 및 적십자 회담시에는 수행원의 약80%를 차지했다.
정치보위부의 활동은 종전까지는 소위 지주·자본가·민주반역자 등 불순계층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남북회담과 관련, 핵심당원 및 간부층에 대한 감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북괴가 특히 이 기구를 신설한 것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려는 조치에 대한 반발세력의 색출 ②반간첩활동기능의 통합 ③적십자회담·남북조절위에 대비한 전담기구 등의 필요성에 따라 만든 것이다.

<회견 일문일답>
이날 발표 후 있은 기자회견에서 공씨와의 문답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귀순동기는.
답=73년1월 개성시의 사회안전부 기술도청과 지도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 월남의 직접동기였다.
당시 나의 직무는 대한민국의 방송을 청취해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북한주민이 식량난에 허덕이는데 반해 남한의 경제부흥이 북괴보다 앞섰다는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김일성체제에 대한 회의·불만이 싹텄고 스스로를 비판해 오던 중 나의 동료 한 명이 술자리에서 김일성을 「독재자」라 했다하여 개성정치보위부의 감시를 받은 사건이 나의 월남길을 재촉했다.
나는 그 동료에게 감시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공범자로 몰리게 됐고 필경은 숙청되어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면치 못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에 월남한 것이다.
▲문=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자로 알려짐에 따른 권력투쟁은.
답=작년 비공개로 열린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일이 당의 선전선동부장 및 당중앙위 비서로 추천되었을 때 당내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국가정치보위부를 이용해 반대세력을 탄압, 당 조직을 통해 김정일을 선전하고 있다. 그 내용은 김일성에게만 쓰던 「존경하는 지도자」 「우리 지도자」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김정일 말씀「노트」를 만들어 그를 우상화하고 있다.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정무원 부총리로 있어 행정실권을 쥐고 있으며 부인 김성애가 여맹위원장직을, 외삼촌 강량욱이 국가부주석을 맡는 등 북괴는 독재체제를 굳히기 위해 족벌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대두된 이후 김성애의 권위가 약간 떨어졌고 그들의 사이도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남북대화에 대한 북괴의 기본태도=어떤 것이며 어떻게 선전하고 있나.
답=북괴는 남북대화가 미국의 한반도 영구분할책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7·4공동성명 이후 북괴는 남북대화와 조국통일에 대해 집중학습을 폈으며 그들은 남한이 미·일 경제침투로 파산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화에 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남북대화는 김일성 사장의 승리라고 선전했다.
▲문=현재 북한주민의 생활은.
답=식량은 완전배급제로 식량절약운동이라 하여 하루lℓ씩 감량해 공급한다. 잡곡 혼합비율도 대5에서 3대7로 잡곡비율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평양만은 선전을 위해 아직도 5대5로 공급하고 있다.
북괴는 또 주민의 사상적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5호담당제」라 하여 다섯집을 1조로 묶어 서로 감시토록 하고, 「위생검열제」라 하여 사찰기관의 직원을 주1회씩 개인 집의 안방에까지 들어가 수색하게 한다. 특히 각 집에 있는 김일성 초상화에 대한 우상화를 강요, 김일성의 초상화는 어느 집이건 제일 깨끗한 방의 제일 깨끗한 벽에 걸도록 지시, 그 벽에는 다른 액자나 옷조차 걸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문=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내용은.
답=1인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절대성의 원칙」 또는「무조건성의 원칙」이란 걸 만들어 절대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사상교양을 받으며 군복을 입고 장난감 총으로 군사놀이를 하며 자란다.
성인은 매일2시간씩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강연 및 교육을 강제적으로 받고 있으며 「김일성선집 1백번 읽기 운동」 또는 「1백번 베껴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주민의 반항으로 △지난 66년 개성시판문군에서 주민17명이 결사대를 조직, 각종「비라」를 만들어 살포하다가 처벌되었으며 △68년에 역시 개성에서 청년30명이 결사대를 조직. 무기까지 조달해 폭동을 꾀하다 검거됐으며 △71년8월15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있은 기념식장에 참석하는 김일성과 「시아누크」를 현지 청년4명이 암살하려는 음모가 사전에 적발되는 등 김일성의 우상화에 대항하는 주민의 활동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정치보위부는 이러한 반김일성 사건을 「9번 사건」이라는 위장명칭으로 부르며 관계자는 재판 없이 사형에 처한다. 이는 재판과정에서 김일성을 모독하는 발언이 다시 재연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문=북괴의 경제실정은.
답=모든 정책이 중공업에만 집중되어 국민생활은 한 마디로 인간이하이다. 노동력이 부족해 72년11월 이후 비생산부문에 종사하던 남자는 모두 중공업부문으로 빼돌리고 그 자리는 여성노동자로 채웠다. 김일성은 철저한 내핍으로 민족해방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문=북괴의 전쟁준비 상태는.
답=준비상태가 아니라 이미 70년 초에 준비를 끝내고 남침구실을 찾으며 명령을 대기하는 상태이다.
73년 말 28차「유엔」총회가 열렸을 때 북한에서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되면 적화통일을 할 수 없다하여 꼭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증거로 작년9월 중순부터 40여일 동안 북괴전군은 비상대기 했으며 모든 야포는 휴전선 부근으로 이동해 포구를 남쪽으로 향했었다.
정주이남지역은 특별경계에 들어가 민간인「버스」까지 위장망을 친 채 운행했으며 노동적위대·붉은 청년 근위대에 실탄을 지급했었다.
최근에는 3만5천명 규모의 「특수 8군단」을 조직. 전쟁 때 육·해·공으로 남한후방지역에 침입, 기습매복·암살·폭파 등으로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려고 꾀하고 있으며 전국의 매세대에 3일분의 비상 식량이 든 비상배낭을 준비토록 했다. 특히 군부대의 소대장·중대장 등 일선지휘관을 모두 미혼자로 바꿨으며 고급 지휘관도 젊은 층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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