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제41화 국립경찰 창설(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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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찰기구개편>
경기도 경찰부장에 취임한 창랑 장택상씨의 앞에는 고하 송진우 선생 암살범을 체포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요인들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당면과제가 놓여있었다.
창랑의 미망인 김연식 여사(74)가 부군이 경찰부장직을 수락하고 귀가하던 날 권총을 차고 들어온 남편을 보고 『어쩌려고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자리를 맡았느냐』고 걱정하자 창랑은 『고하의 원수를 갚고 요인들도 내가 보호해야 되겠기에 자진해서 수락했다』며 굳은 결의를 나타냈다고 그때 일을 회상했다.
창랑은 그날 수표동91의1 자택으로 놀러왔던 인촌 김성수 선생의 부인 이아주 여사를 보고도 『부인, 걱정 마시오. 앞으로는 내가 인촌도 책임지겠소』하며 자신에 넘쳐 있었다는 것.
창랑은 부임하자마자 계동 인촌 선생자택에 경찰관 5명을 배치, 경비를 맡게 했다.
송진우 선생의 암살사건이 일어나고 곳곳에서 「테러」가 계속되자 각계 요인들은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집을 옮겨가며 잠을 자야했다.
창랑이 경기도 경찰부장에 취임한 지 3개월 뒤인 46년4월11일 군정청은 「국립경찰조직에 관한 건」을 발표, 경찰의 조직과 기구의 일대개편을 단행했다.
이 개편으로 종전의 각도 경찰부는 관구 경찰청으로 개칭하게 됐고 지명에 따라 부르던 일선 경찰서의 이름도 구 번호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서울에는 수도관구 경찰청이 생기고 전국에는 9개의 관구 경찰청이 발조했다. 이와 함께 경무국도 경무부로 개칭됐다.
경찰계급의 호칭도 종전의 경무국장은 경무부장으로, 경찰부장은 관구경찰청장으로, 경찰부 차장은 부청장으로 바뀌어 중앙의 경무부장 외에 각시·도에 경찰청장·경찰부청장·총경·감찰관·경감·경위·경사·순경의 8등급의 직제가 마련됐다. 감찰관은 일반 경찰청장과 대동한 위치에서 경찰행정을 감독하고 제반보고를 경무부장에게 직접 하는 자리였다. 수도관구 경찰청은 이때부터 수도청으로 부르게됐다. 창랑은 수도청 수사과장 노덕술을 직접 지휘, 고하 암살사건수사를 독려했다.
노덕술 수사과장은 형사들에게 책임제로 고하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 보고토록 하는 등 서울시내 전경찰서의 수사진이 모두 이 사건에 매달렸다.
각 방면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경찰은 46년2월13일 『송진우씨의 신변보호를 맡고 있던 김일수가 해안경비대에 입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김일수는 사건 후 자취를 감추어 경찰이 암암리에 쫓고 있던 인물이었다.
장택상 수도청장은 곧 미군경찰부장 「스톤」의 양해를 얻어 미군인 2명을 해안경비대에 파견하고 노덕술 수사과장과 이만종 형사를 그날 하오5시 서울역에 잠복시켰다가 해안경비대로 가기 위해 역사에 나타난 김일수와 같은 신변보호인이었던 정종근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을 취조한 끝에 경찰은 고하의 신변보호인으로 있다가 의견충돌로 그만둔 신동운·백남석·김의현 등이 사건에 관련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김일수와 정종근을 연락책으로 이용, 인천시 화평동에 숨어있던 고하 살해범 유근배와 서울시내 신당동304에 숨어있던 배후주범 한현우·김의현 등을 체포했다.
사건발생 1백일째인 다음해 4월9일의 일이다.
한현우는 일본서 모대학을 졸업한 뒤 중야정강의 동방회 회원으로 있다가 일찌기 동조영기를 암살하려다 실패, 10개월의 징역까지 받은 전과자였다.
한은 해방 후 귀국하자 민족주의를 표방, 좌우양측의 통일을 부르짖다 목적을 이룰 수 없자 힘에 의해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실행하게된 것이다.
그는 심복으로 유근배·김의현 등을 포섭, 이들로 하여금 여운형·박헌영·송진우씨 등을 살해하라고 지령했으나 여운형·박헌영의 암살은 실패하고 고하선생만 살해하게 됐다고 경찰에서 자백했다.
경찰은 또 주범 한현우에게 권총과 10여만원의 자금을 주어 범행을 도와준 당시 영화기업사장 전백도 체포, 검찰에 송치했었다.
범인들은 오랜 공판 끝에 49년8월2일 대부분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으나 대한민국정부수립과 함께 특사로 사면됐다.
해방당시의 어지러운 치안상태 아래서 강도사건하나 제대로 해결치 못했던 경찰이 이사건의 범인들을 일망타진함으로써 비로소 경찰의 체통을 세울 수 있었다. <계속><제자 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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