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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경보 울린 90회 정기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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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발휘 될가… 고도의 정치력>
10월 유신 이후 정국에 긴급조치란 한파를 몰아왔던 개헌 논의가 야당에 의해 또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그런 대로 순항했던 90회 정기 국회에는 폭풍 경보가 울리고 있다.
여야는 12월 2일까지의 제2단계 의사 일정에 일단 합의했으나 국회 운영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
헌법 개정 공동 기초위 구성 결의안 등 정치 안건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야당과 이를 피하면서 내년 예산을 다루려는 여당의 입장이 조화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신민당은 15일 정무회의에서 김영삼 총재가 밝힌 개헌 추진을 정식 당론으로 결정,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유신 체제를 바꾸는 개헌에 반대한다. 이 상치되는 두 입장은 필연적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다. 부닥치면 여야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지, 정국에 새로운 폭풍을 몰아갈지-.

<두번 다 김 총재가 발상>
신민당의 개헌론은 두번 다 김영삼 총재가 선도 한 것. 작년 말 개헌론이 일었을 때 당시 부총재였던 김 총재는 신민당 간부로서는 제일 처음 개헌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후 신민당의 개헌 추진 결정은 1·8긴급조치로 첫 번째 좌절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또다시 만장일치의 형식으로 개헌 추진을 결정하고도 신민당 의원들의 개헌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나 시국을 보는 감각은 곧 일사불란하진 않다.
『개헌 요망은 이 나라의 대세다. 이러한 대세의 흐름 속에 역류란 있을 수 없다』는 김 총재 말대로 표면상 개헌 원칙에 대한 이론은 전무.
그러나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와 『진짜 각오를 하고 하는 것이냐』는 신중론, 그리고 비주류 일부의 평소 당수에 대한 견제 심리 등이 상당히 노출되고 있다.
정무회의와 의원 총회에서 발언한 16명을 한 당 간부는 「뉘앙스」로 보아 세 범주로 분류한다.
첫째 개헌 문제를 제기, 추진하는데 김 총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 둘째 뜻은 같이하나 당수의 단독 추진이 아니라 중지를 모으고 당의 단결을 도모하면서 추진하라고 강경 투쟁을 부추기는 사람, 세째 시기와 제약까지를 얘기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

<신민 의원 태도 3가지 범주>
첫 분류에 속하는 발언자는 고흥문 정해영 김형일 김수한 김옥선 신상우 오세응 유제연 고재청 의원이며, 이철승 정일형 김원만 이민우 박용만 황호동 의원은 태세와 방법론을 강조했다.
야당 의원들의 대표적인 발언을 옮겨 보면-.
△김영삼=어려운 일을 하는데 희생이 없을 수 없다.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 우리가 국민과 더불어 민주 회복에 투신할 때 이일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정무회의). 이는 결코 내 개인만 위한 것이 아니고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바라는 민주 국민의 한 사람,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사명감에 의한 것이다. 국민의 희망이니 여론이 어떠니 학생이 어떠니 해서 따라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가 믿는 길을 위해 국민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의원총회).
△유제연=학생 사태와 종교계 사태는 심각하다. 우리 제의에 여당이 불응하면 우리는 범 국민적 기구를 구성해서 민주 투쟁을 전개하자.
△김원만=총재가 대표 질문에서 헌법 개정 공동 심의위를 제안하기 전에 정무회의에서 사전에 얘기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제정 과정부터 잘못된 이 헌법을 전원 일치해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고쳐야 한다.
△이철승=안보·제도·정치상의 지속적 제한을 헤쳐 가려면 전략 전술이 능해야 한다. 탄력성 있고 효율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선 총재에게 일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전략 전술면에서도 비공개 회의라도 해서 당수의 지도 방침까지 포함해 중지를 모아야 하며 이에 따라 학생의 유혈을 방지하고 개헌을 성공시켜야 한다.
우리는 「배지」를 떼고 유혈을 당할 각오로 이 일을 추진해야 하므로 개헌의 시기와 방법과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정무회의). 개헌 문제를 김 총재가 제안하는 것같이 보이나 이미 유진산 총재 때부터 제기 돼 만장일치로 가결된 적이 있다. 이러한 심로로 유 총재가 득병해 죽었다(의원총회).

<공화당의 태도에도 탄력성>
야당의 개헌론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일단 분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8일 『일부 인사가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현 헌법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것을 비민주적이라고 한다면 그 같은 생각은 용납될 수 없으며 더우기 그러한 야욕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두 선동·가두 서명 등으로 민심을 소란케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총리도 같은 날 현 단계로서는 헌법을 개정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전에 긴급조치에 해당했던 언동이 한도를 넘으면 긴급조치는 또 발동할 수 있는 성격』이라고 개헌 논의를 경고.
개헌 불가의 한 이유로 이효상 공화당 의장 서리는 향후 3, 4년이 북괴와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란 점을 들었다. 향후 4,5년이 우리 안보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사실은 국회에 보낸 박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이 3, 4, 5년이란 시기가 현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6년 임기가 끝나는 때와도 대충 일치돼 현 제도와 관련된 어떤 시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78년 가까이 가서 개헌론을 제기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개헌론에 대한 정부·여당 수뇌의 태도에 버금 할만큼 정치를 원내로 집약시키자는 여당의 입장도 상당히 강하다.
그런 점은 개헌론에 대한 박 대통령의 말 가운데 원내·원외에 대한 강도의 차이에서도 엿보여진다.
그래서인지 과거 같으면 성향이나 체질로 봐 개헌 문제가 나오자 당장 일축하던 여당 간부들이 요즘은 무척 신중한 반응.

<11, 12월이 최적기로 판단>
야당이 제기할 계획인 개헌 공동 기초위 구성 결의안에 대해서도 김용태 공화당 총무는 『모든 문제를 일단 상임위에서 다루고 상임위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여당으로서는 이 결의안을 일단 의안으로 성립은 시켜 놓을 심산인 것 같다.
야당으로서는 「포드」 대통령의 방한 전후, 「유엔」의 한국 문제 토의, 본 예산 통과가 겹칠 12월초까지를 호적기로 보고 일 단계 원내 투쟁을 강력히 벌일 계획. 특히 김 총재는 부분 개헌은 충분치 않고 전면 개헌이 필요하달 정도로 자기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야당의 개헌 추진이 간단히 수그러들긴 힘들 전망이어서 앞으로 개헌 문제가 정기국회와 정국의 최대 「이슈」가 될게 틀림없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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