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살인의 밑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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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정에서 사상 초유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 나라 법정의 계호와 교도소 안에서의 감호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드러낸 국치적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정에는 교도관이 7명이나 있었는데도 다른 죄수 19명을 감시하느라고 법정 안팎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살인 범행을 저지르게 했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교도관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었길래 흑판이나 들고 흉기를 가지고 덤비는 범인의 범행을 막으려 했는지 실로 아연할 따름이다.
과거에도 재판을 받고 있는 범인이 수갑을 풀어 던진다든가, 오물을 버린다든가 욕설을 퍼부어 법정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정에서까지 살인극이 일어난다고 해서야 어떤 판사나 검사 또는 증인이 안심하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조리 있는 언변만으로 정사를 가려야 할 법정에서 폭력이나, 흉기가 날뛴다고 해서야 어찌 법의 공정한 적용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흉폭한 살인범이 법정에서까지 다시 살인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평소 교도소 안에서의 범죄인 감호가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살인범이 교도소 안에서 살인 흉기를 만들어 법정에까지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은 한마디로 이 나라 행형 60년의 고질적인 문젯점을 백일하에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교도관들의 사기가 일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는데다가 개중에는 재소자의 영치금을 횡령하거나 재소자들로부터 유흥비를 뜯어내는 등 비위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소자들의 서신을 몰래 전달, 증거 인멸까지 거들어 주는 일조차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이러한 부정을 저질러도 이들에 대해 엄중한 처분을 할 수 없는 것은 후임자의 보충이 어렵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사태를 이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물론, 이들 교도관들의 비참한 처지와 남모르는 고민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재 전국 27개 구치소 및 교도소에 근무하고 있는 교도관은 불과 3천4백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평균 36시간을 계속 근무하고 있으며, 그들 중 90%를 차지하고 있는 5급 공무원의 월급은 고작 2만7천원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생활급에도 미달하는 박봉인데다가 사회의 밑바닥이라 할 재소자들과의 거친 생활 속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자포자기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연평균 이직율은 전체의20% 안팎이며, 격무로 인한 결근율도 매일 3%에 이르는 1백여명에 달하고 있다 한다. 이러한 비정한 직업 환경 때문에 교도관 모집시에는 응모자 수가 모집 인원에 미달하는 실정이며 합격자도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직하고 만다고 한다. 이러한 실정 하에서는 교육 행형의 이상이란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는가. 교도소 교도관들이 재소자에게 주는 콩밥을 가로채 먹는 일조차 있는 현실 하에서는 행형이란 사회 격리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요, 교도소는 도리어 재소자들의 범죄 학교로 전락하기 마련일 것이다.
재소자들의 행형 교육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교도관들의 생활급 지급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경찰관에 못지 않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에게 적어도 경찰관과 같은 보수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내무부 직제 개정과 경찰 공무원 보수 규정의 제정으로 경찰관의 보수는 모두가 1계급 승진하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교도관들에게도 경찰 공무원과 같이 보수와 처우를 개선하는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경찰관과 같은 보수를 지급하면서 동시에 법에 소정된 특근 수당과 야간 수당을 지급하여 생활급을 확보해 줄뿐만 아니라 현재의 1명대 14명으로 되어 있는 경호 담당 비율을 일본의 1대 4, 미국의 1대 6에 접근시킬 수 있도록 필요한 증원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교도관들에게 생활급을 확보해 주고서 이번과 같은 계호상 책임이 있는 경우 가차없는 면직 처분 등을 하여야만 교도 행정이 바로잡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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