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 <제40화>기독교 백년 (32)-강신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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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훌륭한 교역자들>
이번 회에는 우리 기독교단에서 잊히지 못할 목사님들과 그들의 언행을 좀 되새겨봐야겠다. 이런 얘기들은 내가 40년 교단생활에서 직접 겪기도 했고 또 다른 목사들에게서 전해들은 것들이다.
1937년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이야기다. 한번은 고당 조만식 선생이 예배가 시작된 다음 예배당에 들어서자 주 목사는 "조 장로님. 장로로서 교인보다 늦게 왔으니 거기 좀 서 계시오" 했다는 것이다. 고당 선생도 문안에 들어선 채 그대로 서 계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주 목사는 고당 선생이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 그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그 교장에 그 학생이고, 그 목사에 그 장로라고 모두들 존경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대구 남산 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 선생이랍시고 열심히 교회에 나갈 때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이문주 목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구수한 인간미를 풍기는 분이었으나 말이 없기로 유명했다. 가정 방문을 하더라도 쓸데없는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또 공연히 오래 앉아있지도 않았다.
한번은 이 목사님 이 후에 목사가 된 김만성 조사님 등 몇 분과 교외로 나갔었다. 당시 대구서 팔달 교까지 가기 전에 원대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이곳은 채소밭과 미나리 논이 많았고, 대구 시내의 변소들을 쳐다가 모으는 공동 처리장이 있었다. 냄새가 고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옆을 지나가던 김 조사는 손으로 코를 막으면서 "에잇, 냄새 고약하다"하고 한마디하자 이 목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김 장로, 그래 뵈도 그게 1주일 전만 해도 대구 시내 한다하는 일류 요리 집에 있던 거요"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분은 도통했다고 할까, 달관했다고 할까, 모든 일에 초월하신 분이라고 느껴진다.
1936년 나는 평북 선천으로 갔었다.
학생시절에 한 두 차례 잠깐 들른 일은 있었으나 이 길은 교역의 길이었다. 바로 두어 달 전에 회갑을 맞은 김석창 목사님을 도와 일하는 전도사로 부임한 것이었다. 내가 있던 남 예배당은 북 예배당보다 10년 후에 지어졌으나 천장에서 비가 새고 목재도 상한 곳이 많아 개축하게 되었다. 교인들이 세차래나 헌금을 하고 정성을 들여 결국 새집을 지었다.
그런데 새 교회 입당예배를 앞두고 주일학생들이 새집에다 낙서를 해버렸다. 당시 당회 서기로 일하신 박찬빈 장로는 성미가 몹시 급하신 분이라 주일학생들을 막 야단을 쳤다. 이것을 본 김석창 목사님은 웃으면서 "집이란 짓는 그 시간 낡은 집 아니요. 헌당식 할 때 한번 손질하면 되지 않겠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오늘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난번 새문안 새 예배당을 짓는 동안에는 더욱 그랬다.
한국 신학대학의 전신인 조선 신학교의 교장으로 있다가 6·25 사변 때 납치되어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송창근 목사가 경북 금천 황금동 교회에 목사로 있을 때 이야기다. 한번은 어느 여름날 송 목사가 한 장로 댁을 찾아갔더니 그 장로께서는 대청마루에 앉아 담뱃대를 피워 물고 있다가 하도 급하니까 불도 미처 끄지 못하고 조끼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송 목사는 태연하게 "장로님, 그 조끼 타겠습니다. 담배 그대로 피우도록 하십시오" 했다. 그리고 담배가 죄 되는 것 아니니 꼭 피워야겠으면 피우라고 했다.
그 다음 주일날 송 목사는 광고시간에 "우리 교회 모 장로님은 속이 좋지 않아서 담배 좀 피우니 여러분들은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고 하였다. 그 장로님은 그 날로 담뱃대를 꺾어버리고 그때부터 완전히 금연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창근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로 일했던 현 대한기독교 서회 총무 조선출 목사에게서 들은 것인데 생각하면 참으로 멋이 있는 이야기다.
해방 후 성결 교단을 재건하는데 노고가 많았던 이명직 목사는 전 기독교계에 널리 알려진 분이다. 서울 신학대학의 전신인 서울 신학교 교장까지 지냈던 그는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갖고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식 석상에서 "이명직 박사님"으로 자꾸만 소개하니까 이 어른은 단에 올라가 "이명직 박사가 아니라 목사올시다" 하면서 "내게는 목사가 천직이니 사람들이 주는 박사보다 훨씬 좋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가짜 박사까지 흔한 요즘에 비하면 이런 분들은 참으로 영적 차원이 높은, 다시금 존경할만한 분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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