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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산업단지에 커피점을 못 낸다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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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월 말쯤이면 경기도 시흥 시화산업단지에 ‘첫 커피점’이 생겨난다. 작은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소 겸 매점을 개조해 만든 커피점이다. 바로 인근엔 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경기도는 커피점 개점을 강행(?)하기로 했다.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산단 내 기업들의 요청 때문이다.

 현행 산업집적화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산업시설 구역 내엔 편의점이나 음식점, 카페, 은행 등의 시설이 들어설 수가 없다. 규제 때문에 산단지역에 커피점을 낼 수가 없으니 경기도는 아이디어를 냈다.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관리사무소 한편의 매점을 개조하기로 한 것이었다. 황정은 경기도 대변인은 “산업단지 규제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화장실 옆 커피점을 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7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유치하기 위해 토지를 60년간 공짜로 빌려줬다. 44억 달러가 투자된 이 테마파크엔 연간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중국 정부도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세우기 위해 100년간 토지 무상사용, 1조원 지원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런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내년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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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국제적 시각이 부족해 낡은 수도권 규제개혁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 대토론회’에 참석한 김문수(63) 경기도지사는 각 정권이 공염불에 그쳤던 ‘규제개혁 실패’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대표적인 예가 유니버설 스튜디오다. 2007년 경기도는 시화호 인근 화성시 매립지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를 유치했다. 투자금은 5조원대. 경기도는 고용효과가 15만 명에 달할 것이라며 크게 반겼다. 하지만 테마파크 유치는 8년째 답보 상태다. 토지 문제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토지 주인인 수자원공사가 5000억원대의 보상을 요구하며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사업이 사실상 좌초됐다”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무상임대한 나라에 비해 뒤처진 대표적인 기관 규제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영국·프랑스·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업투자 유치를 위해 수도권 규제정책을 포기했지만 한국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며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정부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엔 인구 급증과 토지 부족 등의 문제로 수도권을 규제하는 것이 당연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서울 인구가 1000만 명 이하로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는 미분양되는 집(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경기도의 그린벨트를 풀어도 기업을 위해선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며 “국가 전체 경제발전을 위해 규제개혁의 시각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참석자(왼쪽부터)는 박종석 프렉스에어코리아 이사,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윤섭 환경부 환경정책관, 이호승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심의관, 허재완 중앙대 교수,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김정호 연세대 교수,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동반성장연구센터장. [사진 경기도]

 토론회에 참석한 허재완 중앙대 교수는 세제개혁과 규제개혁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국가전략특구’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오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도쿄, 오사카, 아이치현 등 대도시권을 대상으로 한 ‘국가전략특구’를 지정했다. 특구가 된 도쿄도(都)는 전략적으로 해외 의사면허 보유자들에게 문을 열었다. 일본 내에서 진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쿄도는 해외 유명 유치원과 초·중·고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도시계획 용적률과 용도변경 규제도 완화했다. 오사카 역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특구를 설치하고 법인세를 인하해주기로 했다. 카지노와 호텔 등을 복합화한 통합형 리조트도 건설하기로 했다. 아이치현(縣)도 항공우주산업 특구를 설치하고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기로 했다. 허 교수는 “중국 정부도 상하이를 지난해 ‘자유무역 시범구’로 지정하고 통관 절차를 간소화해 기업 편의를 높이겠다고 나서면서 시범구 지정 1개월 만에 20여 개 외국기업을 포함한 200개 기업이 시범구에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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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교수는 “우리의 창업환경 역시 선진국 수준에 확연히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여건은 세계 189개국 중 34위에 그쳤다. 창업을 위해 들어가는 ‘행정비용’도 미국 뉴욕(80만원)의 4배인 350만원으로 나타났다. 중국 상하이, 뉴질랜드(각 12만원)보다는 약 30배나 비쌌다. 허 교수는 “창업 기업의 절반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인 서울·경기에 집중돼 법인등록면허세를 과중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일관성 없는 행정규제도 규제개혁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허 교수는 “현대자동차가 서울 성수동 뚝섬 인근에 약 2조원을 들여 초고층 빌딩을 짓고 전 계열사를 입주시킨다는 프로젝트를 세웠지만 도시계획 사전협상제도에 따라 서울시와 협의하던 중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의료·금융 서비스업 규제 완화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찾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인도와 태국은 외국 환자를 받아 외화를 벌고, 중국도 특구를 지정해 의료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한국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규제 때문”이라며 “작은 신상품 하나 만들려 해도 감독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짧게는 2주, 길게는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금융기관의 장은 낙하산으로 내려오기 다반사라 금융기관 경영자라면 누구나 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면서 “한국에서의 금융은 절반쯤 정치에 발을 담가야 하는 일로 남아 있다”고 꼬집었다.

 토론에 참석한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규제개혁을 하면 손쉽게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며 ‘브루 전문가(양조 전문가)’를 예로 제시했다. 과거 맥주제조를 위해선 면적기준, 혼합하는 알코올 통의 기준이 있어 ‘하우스(house) 맥주’ 사업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규제가 사라지면서 커피 바리스타처럼 브루 마스터가 국내에 100여 명 생겨나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규제완화가 실현된다”며 "대통령이 앞장서 규제 개혁의 기준을 마련하고, 내용이 뭔지, 규제기관은 누구며, 규제를 통한 혜택과 피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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