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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 문화재와 민속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의 여러 박물관에서 우리 나라 문화재를 보면 은연중 아까움과 분함을 억누를 수 없다. 그 숱한 물건들의 태반이 약탈당했거나 거저 가져간 것이거니 싶어 도무지 언짢은 마음에 돌아서고 만다.
그런데 구미에서는 좀 사정이 달라진다. 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이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에 산더미같이 쌓인 저들의 것을 보며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 일이지만 한국인이 제것을 대하는 감상은 우선 반갑다. 그리고 그 초라한 진열장에 어떤 연민마저 느꼈다.
제한된 기일과 박물관에서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의 유물들을 다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다만 바쁜 여정이지만 되도록 짬을 내어 한국유물의 진열 상황을 체크했다.
한마디로 한국미술은 구미 쪽에 소개가 덜 돼있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근무하는 원창훈씨가 한국미술에 관한 책자라면 무엇이든 보내주기를 신신 당부하고 있었는데 그 점은 여러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점에선 미지의 극동의 한 나라라는 편이 좋으리라.
파리의「기메」미술관은 동양의 미술품을 꽤 간직하고 있어 우리 나라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사실 거기에는 인도·중국·일본의 것이 제법 쏠쏠하게 진열돼 있고 그 안쪽 깊숙이 한국 유물장도 마련돼 있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 됐으리라고 믿어지는 금 동제 장신구와 마구의 단편들이며 토기가 몇 점 있었고 또 어딘지 석연 찮은 일본인 취미의 다 구를 포함한 이조 기들이 약간 있었다.
그런데 중국실의 자기 진열장을 돌아보는 동안 그 중간에 우리의 청자 10여 점이 포함돼 있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낱낱 물건의 설명 판에는 분명히 KOREA라 기재돼 있지만 도대체 중국 속에 일괄시킨 점이 불쾌했고 특히 안내서의 극동지역 지도에 평양쯤을 점찍고서 낙랑의 중국 음을 표기한데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에선 한국도자기가 비교적 괜찮게 간수된 곳이 베를린의 달렘 박물관과 런던의 빅토리어·앨버트 박물관.
동양 관의 성격을 띤 달렘 박물관에는 청자상감국모란문과형주자를 비롯한 고려청자와 백자대접 등이 있고 특히 삼국시대 금귀고리와 목걸이 등은 자랑하는 물건의 하나였다. 또 동경·동인·자개함 등도 수 점을 헤아리는데 서화가 한 점도 없어서 그것을 구비하려는 게 극동담당 큐레이터의 시급한 소망이었다.
빅토리어·앨버트 박물관에는 그 넓은 진열실 속에서 단 두개의 장만을 비치했을 뿐이지만 질로는 우수한편 이었다. 백자로는 진사연학문호·청화보상당초문병이 괜찮고 화청자모란문과형병을 비롯한 수 점의 청자는 국외 전시품으론 당당해 보였다. 또 거기 합께 전시된 은인사동병은 무늬도 정교한 채 완형 이려니와 동녹의 윤기로 해서 두드러진 일품.
대영 박물관에는 도자기보다 자개 경함과 상자가 더 눈에 들었고 금동불이며 큰 폭의 불화 등이 결코 소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일본다음으로 우리 나라 유물이 많이 건너간 지역. 보스턴 시카고 디영 피바디 박물관 등이 비교적 많은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러한 곳엔 미처 가지 못했고 다만 워싱턴의 프리어 미술관에서 30여 점의 한국 도자기를 대할 수 있었다. 대체로 중국 혹은 일본실의 한 구석에 한국 장을 곁들인 몰골인데 프리어에서 만은 당당히 1실을 차지해 흐뭇했다.
여기엔 한국유물이 5백점 가량 수장돼 있고 현재의 진열품도 그 동안의 구미 박물관 중에선 가장 우수했다. 국내에 유일한 국보133호 청자진사연판문표형주자와 똑같은 것(일부 수리되고 뚜껑이 없지만)이 있는가 하면 청자로서 정병·매병·장경병·대접 등 만만찮은 물건이 즐비했다.
이런 수례를 제 외고는 대체로 한국 실을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게 상례다. 파리의 루브르에선 끝내 지쳐서 찾기를 단념했고 코펜하겐의 국립박물관에선 결국 안내인을 앞장세워 구석방을 찾아냈다. 스톡홀름의 동아 박물관이나 뉴요크의 메트러폴리턴에도 한국 것이 있긴 해도 시 덥지 못할 뿐더러 역시 눈에 안 띄는 위치.
민속품으로 소개된 예는 파리의 인간박물관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워싱턴의 자연박물관. 코펜하겐의 국립박물관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정이나 진열은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었고 그들에게 좀 더 협력해 줄 수 없는 것이 안타 까왔다.
낯모르는 먼 지역에 한국을 정당하게 소개하고 이해시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박물관을 통한 문화사절의 긴요 성을 거듭 다짐했다. 그러려면 우리 나라의 박물관·미술관 사업은 국제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겠고 서로 긴밀한 유대아래 협력하는 길밖에 없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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