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못 보는 국내 발명특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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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장 새롭고 유용한「아이디어」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는 발명 특허. 외국에서는 한가지 발명특허권으로 일생 치부한다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많은 특허권자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골탕을 먹는 사례가 허다하다.

<「클로로필린」정제방법의 경우>
누에똥을 이용, 의약품·식품첨가물·화장품·동물 사료 첨가물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클로로필린」추출 기술을 발명한 안장수씨(32·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8)의 예는 국내의 발명특허가 자본주나 기업가에게 얼마나 외면 당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안씨가『동「클로로필린·나트룸」의 정제 방법』이라는 발명특허(특허번호4051)를 얻은 것은 작년 11월23일. 연구생활 3년 6개월만의 결실이었다.
안씨의 발명특허는 누에의 배설물에서「클로로필린」이란 유용한 성분을 뽑아내는 방법이다. 「클로로필린」은 세포조직의 부활, 육아 조직의 재생 촉진, 장 기능조절, 악취 제거, 항「알레르기」작용 등 약리 작용을 지니고 있는 약품으로 각종 의약품을 비롯해서 식품 첨가물·화장품·동물사료 첨가물의 원료 등 광범위한 용도를 지니고 있다.
안씨의 발명은 연간 2만5천t이나 되는 국내의 풍부한 누에똥을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클로로필린」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용화단계에서 안씨의 발명특허는 외면을 당하기만 했다. 적당한 기업가에게 소개해 줄 것을 기대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찾은 안씨는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안씨의 설명을 들은 KIST의 K박사는「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발명내용을 상세히 알아야 기업가에게 소개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씨로는 자기발명의 핵심인「노하우」를 가르쳐 줄 수 없었다. 그것은 발명가만이 지니고 있어야할 비밀이기 때문이다.
「클로로필린」을 생산계획하고 있는 S화학에 불러간 안씨는 발명에 발 들여놓은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S화학 측에서는 안씨를 이용하려고만 들었다. 비싼「로열티」(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외국기술을 끌어들이려고 할뿐이었다.
믿기 어려운 국내 발명특허를 이용하는 것보다 외국기술을 끌어들이면「기술제휴」라는 선전 효과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기업가들은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등록된 국내발명 특허는 8월말 현재 총 4천2백39건으로 작년 한해만도 1백99건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실용화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명특허가 국내 자본주나 기업가들에 의해서 외면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발명특허가 외면 당하는 이유로서 외국기술에 대한 막연한 의존경향과 국내기술에 대한 불신풍조라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일본인들의 공업소유권 신청쇄도로 국내 발명가들은 더욱 위축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든 국내의 발명특허를 외면하고 업신여기는 현상은「아이디어」개발 의욕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은 국내 기술을 낙후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김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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