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과 학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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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J·M·케인즈」(1883∼l946)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생애 중에 영국의 많은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의 전기를 저술한바 있다. 그러나 그는 물론 그의 사후에 세계적인 대 경제학자인「R·해로트」경이 그의 학문과 생애에 대한 전기를 출간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해로트」의 「케인즈」전은 「케인즈」의 학문의 성장 과정을 그 당시의 환경의 변천과 대비하면서 기록·해설한 것으로서 「케인즈」의 경제학을 체계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데 있어서는 필독의 명저가 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이 책은 가장 훌륭한 「케인즈」의 해설서이다.
「케인즈」의 경제학을 가능하게 한 요소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와 같은 대 학자와 대 이론을 낳게 하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이 분명하며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완전할 수는 없다.
「케인즈」이론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도 「케인즈」라는 천재였다는 것은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케인즈」의 천재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서는 안 된다.
「해로트」의 『「케인즈」전』을 읽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케인즈 혁명」을 가능케 한 것이 「케인즈」한 사람의 천재와 아울러 당시의 영국의 「엘리트」라는 천재였다는 사실이다. 「케인즈」를 포함하는 이들 천재들은 당시의 영국사회,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국식 관례와 전통이 주름잡고 있던 당시의 국제사회의 질서를 몹시 사랑하여 이것을 보존하고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도를 모색하는데 있어 전심전력을 바쳤던 것이다. 마치 영국을 자기 집과 같이 사랑하였고 그 전통과, 문화를 아꼈던 것이다. 그들에 있어서는 경제이론은 단순한 논리의 유희이기에는 목적의식이 너무나 뚜렷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케인즈」와 그의 동료들은 애국자-비록 애국을 하는 방법이 매우 분별있는 것이기는 하였으나-였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킹즈·칼리지」와 「블룸즈베리」의 교우들, 이들이 빚어내는 인생과 그 분위기, 이런 것들을 보호하기 위하여는 영국식 내지 서구식 자본주의를 보호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을 하기 위한 방도를 제시한 것이「케인즈」의 「일반이론」이었던 것이다. 「일반이론」은 이런 의미에서 정열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당시의 영국사회와 환경 및 전통은 이들 천재의 정열을 자아낼 수 있게 할만한 훌륭한 측면이 있었고 이것이 곧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가능케 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그 사회와 환경이 훌륭해야만 천재가 나올 수 있고, 명저가 나올 수 있다는 관찰이 타당할 것 같다
「해로트」의 전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멋진 인생이란 어떤 것이냐에 대한 그의 안식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노력에 생기를 주었고 이에 대하여는 「케인즈」의 독자들은 그의 모든 저작을 통하여 곳곳에서 그 편린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케인즈」와 오늘의 한국에 태어난다고 한다면 그의「일반이론」은 어떤 것이 될 것인지 상상해 볼만한 일이다. <조순(서울대 상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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