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년 순경」 1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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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8월5일 경찰 대학에 입교, 훈련중이던 전투 경찰대 기간 요원 55명이 교육을 「보이코트」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각 경찰서별로 순번에 따라 1년씩 근무하게 돼 있는 전투 경찰대 기간 요원 차출 과정에 부정이 개입, 순위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것.
조사 결과 서울시경과 M서·N서·J서 등에서 서열상 차출 차례가 된 해당자들을 뒤로 빼돌리고 대신 차례가 되지도 않은 엉뚱한 사람을 차출, 입교시킨 것이 밝혀졌다.
이 소동은 서열을 어기고 빠졌던 6명을 지난달 10일 추가로 입교시킴으로써 겨우 수습됐지만 경찰의 인사가 정실과 내외의 압력으로 아직도 불공정하게 행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살아있는 「케이스」가 됐다.

<상납 실적 나쁘면 한직에>
72년 서울 성동 경찰서 이모 형사 (48)는 경찰 인사를 둘러싼 상납 실태를 낱낱이 적어 청와대 등 요로에 진정하는 바람에 서장 K총경이 지방 전출을 당했다.
당시 수사계에 근무하던 이 형사는 깐깐하고 결백한 성격으로 상관에 대한 「공납금」 상납 실적이 나쁘자 한달 기한으로 상황실 근무 발령을 받게됐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도록 자리를 바꾸어 주지 않자 자신이 겪은 인사 행정의 부조리를 낱낱이 폭로했던 것.
경찰관들은 생활 유지가 봉급으로만 되지 않고 부수입에 더 많이 좌우되는 실정 때문에 이른바 「노른자위」 자리를 노리는 자리다툼이 치열하기 마련. 경찰관들 사이에는 서울시내 중심가 J서의 M파출소장자리는 변두리 T서의 서장자리와 바꾸지 않는다는 「황금자리」로 통하고 변두리 파출소 가운데는 같은 서울 시내에서도 「유배지」로 통하는 곳도 있다.
같은 경찰서 안에서도 대민 관계가 많은 수사·형사·보안·교통계는 자리 다툼의 표적이 돼 있고 민원 부서 담당 경찰관들 가운데는 다른 자리로 옮겨가지 않기 위해 진급되는 것조차 꺼린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고생하는 부서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좋은자리로 가려고 뛰어야 하고 좋은 부서에 있는 경찰관은 항상 다른곳으로 쫓겨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경찰의 생태. 이 때문에 인사를 둘러싼 추문은 그치지 않는다.
몇해전 K도 출신 국회의원이 내무장관이 됐을 때 K도 경찰관 1백74명이 서울시경으로 무더기 전입해왔다. 모두가 장관을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경찰관들. 이 때문에 『서울시내 교통 경찰관이 되자면 K도 출신이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서울 종로 경찰서 김종성 경장 (39)은 지난해 10월23일 종로구 인사동 보림당 강도 살인 사건을 해결, 지난 1월14일 순경에서 경장으로 특진됐다. 그러나 특진되면서 205전투 경찰대로 발령 났다. 8개월째 군대 생활 같은 전경대 근무를 하고 있는 김 경장은 『1계급 특진시켜 놓고 이 모양으로 고생시킨다면 누가 특진하려고 노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에는 20년 이상 순경으로 근속한 만년 순경이 1천여명. l년에 한호봉씩 오르는 순경 봉급은 최고 호봉인 16호봉이 되어봐야 고작 3만1천1백80원. 16년이 넘으면 그나마 호봉이 더 오르지도 않고 정년 퇴직 때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이래서 16년 이상 근속한 만년 순경과 1호봉의 초임 순경의 봉급 (2만9백40원)과는 겨우 1만2백40원 차이. 근무 연한에 따라 지급되는 호봉은 생활에 큰 보람도 되지 못하고 사기앙양에도 도움이 안 된다.

<퇴임 총경들, 인사 난맥 지적>
지난 72년9월29일 계급 정년으로 퇴직하는 총경 27명 가운데 재경 총경 11명은 오치성 내무장관 앞에서 퇴임사를 읽는 자리에서 『…진급을 하자면 맨발로 뛰어야 하고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인사 행정이 바뀌는 부조리가 경찰을 누란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대들다시피 했다. 승진 제도에 심사제가 도입되면서 인사가 있을 때마다 능력 위주의 공정한 기회 부여보다는 정실과 배경이 작용하는 인사 파동이 언제나 뒤따랐다.
이른바 순경에서부터 시작한 「재래파」, 경찰 전문 학교 출신의 「간부 후보생파」, 5·16후에 군복을 벗고 경찰에 투신한 「군 출신파」, 고시를 합격한 「고시파」등 경찰 내부의 4대 인맥에 대한 안배 원칙이 하나의 인사 원칙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도 공정 인사를 해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68년부터 실시된 계급 정년 제도는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지만 정년 연장 문제와 퇴직후의 구제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잡음을 빚은게 사실이다. 총경과 상위급인 경무관이 다같이 계급 정년이 10년으로 돼 있는 점도 따지고 보면 모순 투성이다.

<능력 있어도 밀려나기 일쑤>
현재 전국의 총경은 모두 2백95명. 총경이 하위 계급인 경정과 거의 숫자상으로 비슷해 상위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피라미」식 위계를 흐트러 놓고 있다. 인사의 난맥상은 경정에서 총경에의 승진도 10년을 주기로 해 무더기 승진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승진 주기에 해당하는 해에는 진급된지 3년밖에 안된 신참 경정도 대거 총경으로 진급되는가 하면 승진 공백 기간에는 능력 있는 경정도 10년 동안 진급을 할 수 없는 모순을 낳고 있다. 경찰관들은 총경의 숫자를 크게 줄여 해마다 30명∼40명 정도의 경정이 정기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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