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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불감증'이 키운 염전 노예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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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기
채승기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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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문 기자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 나가 일 년에 1000만원을 어떻게 모으겠습니까. 여기서는 다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열심히 일하면 일 년에 그 정도는 모을 수 있어요. 여기가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난 7일 전남 목포 신의도 신의파출소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파출소는 신의도의 유일한 치안기관이다. 정문 옆에는 2010년 전남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베스트 낙도파출소’ 표지도 붙어 있다. 하지만 현지 경찰조차 섬 안의 염전 인부들에게 벌어지는 불법행위에 대해 별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서울에서 취재할 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편지를 쓸 능력이 있는 40세 성인이 2년 가까이 섬에 갇혀 있을 수 있었을까. 원인은 업주는 물론 주민과 경찰에까지 만연된 ‘인권 불감증’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염전 노예’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슷한 사건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그때마다 현지 경찰 등 관계기관만 반짝 움직였을 뿐 대대적인 단속과 재발 방지 대책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남경찰청장도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인 지난 9일에야 섬 지역 인권침해사범에 대한 특별단속에 나서겠다고 ‘뒷북’을 쳤다. 10일부터는 경찰청이 직접 2주간 대대적인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업주들은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의도에서 만난 한 염전 업주는 “점검을 대비해 인부 방에 도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배 일도 염전 인부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섬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한결같이 푸근하고 순박했다. 그런데 ‘염전 노예’ 얘기만 나오면 정색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염전업자 홍모(48)씨에 대해 “마을 일을 도맡아 한 모범 청년”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염전 인부들을 ‘또라이’라고 비하하거나 ‘오갈 데 없는 정신박약아들을 구제해줬다’는 식으로 말했다. “선불금을 주고 인부를 소개받았으므로 도망 못 가게 잡는 건 당연하다”고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인부들을 일종의 머슴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경찰과 행정기관조차 이 같은 문제를 묵인 내지 방조했다는 점이다.

 신안군 등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나오는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명품’이다. 전남도는 천일염을 세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올해 시설 개선 등에 252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명품은 생산 과정도 명품다워야 한다. 노숙자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거의 노예처럼 부려 만든 천일염을 세계 시장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을까.

채승기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