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여 깨어나라 … 나, 전인권 다시 걸어갈 테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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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까지 닿는 전인권의 하얗게 센 머리는 사회와 끊임없이 불화하며 고집스럽게 음악을 해 온 그의 인생 역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노래가 잠에서 깨어난다. 음악적 동지는 떠났지만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전인권(60)은 돌아와야 했다. 지난해 ‘들국화’ 재결성 앨범에 실린 신곡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지금 이 순간 전인권이 부르는 가장 진솔한 노래다.

 전설의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이 드러머 주찬권(1955~2013) 별세 이후 넉 달 만에 무대에 선다. 27년 만에 주찬권·최성원(60)과 재결성했던 ‘들국화’란 이름 대신 30대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전인권 밴드’로 관객을 만난다. 피아니스트 정원영(54)과 기타리스트 함춘호(53)도 가세했다. 새롭게 편곡한 과거 명곡들을 비롯해 신곡도 발표한다.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라이브 연습은 물론이고 기타 코드와 음계를 새로 익히고 있다”고 했다.

함춘호(左), 정원영(右)

 - 당신을 ‘레전드’라고 하는데, 아직도 공부할 게 있나.

 “나는 핸드폰이 아니다. 핸드폰은 기능이 다 되면 버리지만 나는 레전드니까 (웃음)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 젊은 친구들과 공연하는 건 어떤가.

 “작년에 들국화 활동을 하면서 개인 활동을 했었다. 한 클럽에 신세진 게 있어서 갚느라 젊은 친구들과 잼(즉흥 연주)밴드를 했다. 그 때 정이 많이 들었다. 오히려 테크닉은 젊은 친구들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감정, 느낌이 통하면 된다. 내가 연장자라고 내 뜻대로 해서는 안 된다.”

 - 소통을 잘 할 것 같다.

 “기타치는 친구가 자기 학생들이라며 연습실에 10대 친구를 여럿 데려왔다. 걔들이 나를 되게 신기해하더라. 요즘 애들한텐 없는 개성이 있나보다. 체력 차이도 못 느낀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누구한테나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 정원영·함춘호와의 호흡은 어떤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믿으면서 해나가고 있다. 춘호는 30년 전에 듀엣을 같이 했었고, 정원영은 내가 흠모하던 사람이다. 밴드는 연애 같은 거다. 남자끼리 터치 안하는 아주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연애 같은 거다. 그래서 흠모가 가능하다.”

 - ‘들국화’도 연애를 한 건가.

 “심하게. 아주 화나는 연애를 했다. (웃음) 무지하게 싸웠다. 베이스도 드럼도 왜 그렇게 세게 쳤냐면 전부 화가나서 그랬던 거다. 나도 목소리가 크니까. 그런데 우린 돈 때문에 싸운 적은 없다. 사소한 걸로 싸웠다. 조기 알이 하난데 정확히 반으로 못 나누면 싸우는 거다. 많이 먹겠다고.”

 - 솔직히 최성원과 두 분이 싸운 것 아닌가. 주찬권은 말렸다고 들었다.

 “그렇지, 둘이 싸웠다.”

 -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다. 들국화 초창기 때 우린 이 가요계에서 정말 왕따였다. 당시에 있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음악판에선 최초의 아웃사이더였다. 절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안했다. 삐쩍 말라서 머리는 길고. 그러다 보니 허성욱(들국화의 키보드주자, 97년 작고)까지 셋이서 똘똘 뭉쳤다.”

 - 다시 최성원과 들국화로 활동할 계획은 없나.

 “완전한 해체나 이별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서로 그걸 잘 알고 있다. 자기 인생에 대해 서로 둘 다 절실해야 될 것 같다. 그러면 그게 만날 수 있는 끈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일회용으로 돈 좀 벌자고 만날 순 없다. 사실 제안도 많았다. 하지만 둘 다 들국화답게 거절했다. 돈을 위해서 서로 어색한 만남을 갖는 건 그건 정말 재미없는 거다.”

 - 주찬권이 떠나고 나서는 어땠나.

 “한동안 우울증이 왔다. 앞으로 걷는데 뒤로 걷는 것 같고 진짜 비틀댔다.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면 허무주의 같은 게 온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나. 찬권이는 음악적인 사람이었고 굉장히 여리면서 섬세했다. 그의 음악적 빈자리가 크다. 그래서 기타도 배우고 공연도 빨리 하고 싶은 거다.”

 - 전인권에게 공연은 어떤 의미인가.

 “수많은 진실을 만나는 거다. 추호의 거짓도 통하지 않는. 이번 공연은 정말 새롭게 시작한다.”

 - 신곡 ‘사람답게’도 공개한다.

 “2006년 (마약 혐의로) 필리핀으로 도망갔을 때 쓴 곡이다. 사실 그때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 안에 사람답게 살고 싶은 힘이 남아있더라. 가사가 ‘누구나 그대안에 진실있지, 누구나 그대안에 노래있지, 사람답게 살고 싶은 힘이겠지’다. 모두가 폐인이라고 해도 삶에 대한 설렘과 절실함이 있었다.”

 - 미발표곡이 많다고 들었다.

 “10곡 정도 있는데 갈고 닦는 중이다. 한 곡은 ‘내 얘기가 들리나. 내가 혼자 여기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여기 있는 것 같은가’ 이런 존재에 대한 내용이다. 또 하나는 ‘제2막’이란 노래다. 옛날에 잘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나의 지혜가 됐다. 빗나간 화살이 날개가 됐다. 그런 위안이 되는 가사다. 우리가 다 고생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전인권 걷고, 걷고’ 콘서트=3월 7~9일, 서울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롯데카드 아트센터, 8만8000원~7만7000원. 031-905-7405.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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