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학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구멍가게에서는 주인이 바로 사장이자 사환이 된다. 그러나 사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사장과 사관 사이가 차차 벌어지고 복잡해진다.
과장이 생기고 차장이 생기고 부장을 만들고 그리고 중역자리를 만들어낸다. 사업이 작을 때는 사환이 지배인자리에 뛰어오를 수도 있지만 큰 사업체에서는 부장이 이사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장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
따라서 사장의 권위란 사관과 사장사이의 위계로 반영된다. 위계가 복잡 다양한 회사의 사장일수록 꽤 권위가 높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회사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덮어놓고 위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사장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교부는 대학원을 충실화하여 박사학위의 권위를 높이는 방안으로 석사와 박사 사이에 새로 중간학위를 마련할 것을 검토중인 모양이다. 꼭 사장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중역을 전무와 상무로 쪼개놓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수가 1천 개가 넘어도 학위제도는 모두 같다. 따라서 같은 박사라도 대학에 따라 그 질에는 현격한 차등이 있기 마련이다. 취득과정도 또 크게 다르다. 가령「시카고」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를 얻으려면 보통 7년은 걸린다. 남쪽 시골대학에서라면 2년이면 족하다. 몹시 불공평한 듯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무도 똑같이 보지는 않는 것이다.
학생 쪽에서도 학계에 진출할 생각이라면 3류 교에서 재빨리 학위를 받는 것 보다 1류 교에서 오래 고생하는 쪽을 택한다. 무형의 권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예부터 BA학위 다음에 받는 학위로는 「독톨」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독톨」이 미국의 석사에 해당하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독일의 대학원의 권위는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독톨」학위보다도 「교수」라는 칭호가 더 중요하다. 「독톨」이란 교수가 되기 위한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도 박사학위 이외에는 따로 없다. 다만 국가박사와 대학박사의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양자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장 학위제도가 복잡한 것은 영국의 경우이다. 여기에는 박사와 석사가 있고 그 종류나 취득요건도 대학마다 다르다.
박사학위도 정치학·의학 등 8종류뿐이다. 따라서 가령 역사학으로는 석사이상의 학위를 딸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영국의 석사가 미국의 박사와 맞먹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맞먹을 만큼 힘든 연수과정을 거쳐야 석사학위를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대학원에서 중간학위를 만든다고 우리네 박사가 영국의 박사만큼이나 권위를 갖게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저 절차만 까다롭게 만드는 게 고작이기 쉽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