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규제되어야 한다|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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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국적기업은 현대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 볼 수 있다. 다국적기업은 전 세계에 그 뿌리를 뻗치고 경제적 지배뿐만 아니라 정치적 간섭마저 자행하고 있다. 특히 ITT에 의한 「칠레」대통령선거 간여가 도화선이 되어 「유엔」에서도 다국적 기업문제를 정식으로 다루게 되었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작년 8월 「세계경제에 있어서의 다국적기업」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를 중심으로 20명의 세계 지식인들이 광범한 증언청취와 조사를 통해 「다국적기업의 개발과정과 국제관계에의 영향」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종래의 다국적기업에 대한 현황파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폐해에 대한 국제적 규제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역설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끌고 있다. 20명의 지식인 「그룹」엔 선진국에서 10명, 발전도상국에서 8명, 소련·「유고」에서 1명씩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했다. 다음에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주>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국가생산의 총액은 이젠 국제무역의 총액을 상회했다. 특히 지난 20년간 눈부신 신장을 했다. 다국적기업은 본사를 둔 나라이외의 나라에도 생산·「서비스」시설을 소유 지배하는 기업으로서 개인회사 협동조직 주식회사 등이 모두 포함된다. 현 세계경제에 있어서 가장 긴급한 과제는 남북 격차의 축소이다.
세계각국은 개발의 60년대에 다국적기업이 이룩한 여러 경제적 기여를 인정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짐에 따라 이를 어떤 형태로든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본국에선 이들 기업의 해외투자로 인한 국제수지 및 고용면에서의 악영향과 기업경쟁「룰」의 변형을 걱정하고 있다.
받아들이는 나라에선 외국기업의 진출에 의해 경제 주요부문이 외자에 소유 지배되고 국내기업이 위축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다국적기업이 정치적 주권을 침해할 정도로 비대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또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악영향도 걱정하고 있다.
노동조합 측은 다국적기업의 진출에 따른 노동운동의 위축을, 소비자단체는 다국적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타당성·품질·가격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다.
다국적기업자신은 과격한 국유화조처에 의해 충분한 보장도 받지 못하고 소유재산이 국유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때문에 다국적기업문제는 그 본사가 있는 나라·받아들이는 나라 또 다국적기업자신의 국제적 협조가 필요하며 이런 의미에서 「유엔」이 이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 다국적기업의 폐해가 늘어남에 따라 받아들이는 나라의 정부가 이에 대한 규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투자「프로젝트」·기술도입의 선별·규제 등을 통해서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우려가 특히 두드러지다.
현재 개발도상국은 생존의 최저수준마저도 위협받을 정도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가 많다.
이러한 빈곤의 추방과 남북격차의 해소는 당면한 가장 긴급한 세계적 과제이다. 세계는 국제적 협조를 통해 다국적기업의 역할을 이러한 긴급과제의 해결방향으로 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확실히 다국적기업은 기술개발·기업능력·시장개척·금융조달 면에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은 영리만을 추구하여 자원추출산업 또는 고도기술산업에 몰림으로써 개발도상국의 산업정책과 배지되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나라 측은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그 나라의 소득배분·노동조건·공업화·국제수지 등 여러면에서 국가적 목표와 정책에 합치되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받아들이는 나라 쪽도 자국의 외자수입에 대한 정책을 명확히 밝힐 의무가 있다. 다국적기업에 대한 규제는 처음 진출 때에 명확히 밝혀야 하며 기업이 들어오고 난 후에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사태는 피해야한다.
또 다국적기업을 국유화할 경우에도 충분한 보상을 해야한다.
다국적기업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인 이상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협력에 의해 이를 감독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아래 상설의 다국적기업위원회를 설치하고 다국적기업정보「센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자신도 목전의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출국의 정치적·사회적 입장도 고려하면서 호혜의 바탕 위에서 기업활동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다국적 기업은 거대한 힘과 조직을 가진 괴물과 같은 존재이므로 이를 선용하면 인류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 방치하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는 횡포를 부릴 수가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외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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