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 맞은 소의 지중해전략|「나토」동요가 몰고 온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키프로스」사태가 열기를 띠고 긴장이 고조됐을 무렵 관망상태에 있던 소련이 최근 이의 궁극적 해결에 참여하려는 외교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당초 「나토」(NATO)동맹국간의 분쟁, 미·영의 세력권이라는 정치적 상황에 밀려 직접적인 영향력행사를 주저하며 은근히 사태의 긴박화에 기대를 걸어오던 소련은 처음 「터키」측의 군사작전을 부채질하다가 「그리스」가 「나토」에서 탈퇴, 반미색채를 띠어가자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최근에는 「터키」의 군사작전을 비난, 「그리스」에 대한 접근을 꾀하고있다.
소련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지중해에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숙원을 중동에서 실현하려다가 결국은 「키신저」의 외교에 밀려 고배를 든 뒤 모처럼 찾아온 호기라고 판단한데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키프로스」분쟁 초기에 빚어졌던 미·「터키」관계의 불화, 「그리스」의 「나토」탈퇴, 영·미 등 전통적인 동맹국의 분쟁조정노력의 실패는 소련의 지중해전략상 고무적인 사태진전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
「그리스」·「터키」의 충돌에서 드러난 「나토」동맹결속의 취약성, 「나토」통합사령부의 속수무책은 「나토」의 일각이 흔들렸다는 부분적인 사실에서 「나토」가입국 전체의 이익이 과연 각 국의 이익에 우선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남겨 놓았으며 「나토」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스」의 「나토」탈퇴 역시 당초 생각되었던 일시적인 대미반발「제스처」이상의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의 「그리스」에서는 반미「데모」와 함께 「그리스」정부의 미군기지 폐쇄설이 제법 신빙성 있게 나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나토」탈퇴가 진정이라면 이는 「나토」의 남동부 방위망의 결정적인 구멍이 뚫렸음을 말한다.
소련이 역사적으로 남「유럽」과 지중해 진출의 발판으로 여겨온 「발칸」반도와 직접 인접한 최전방이라는 데서 「그리스」북부국경지대의 전략적 중요성은 지중해지역의 숨통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며, 「유럽」의 「나토」군과 최 남부인 「터키」를 잇는 제방이 터졌음을 듯한다.
애써 발판을 마련했던 「이집트」에서 물러난 소련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여태까지 소외되어 왔던 이 지역에 진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미·영의 막후조정으로 소집됐던 「제네바」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유엔」안보리국가들에 의한 확대국제회의를 소집하자고 나선 소련의 제안은 따라서 소외에서 벗어나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리스」에 대해 북부국경지대에 대한 소련이 안전보장을 제의했고 「그리스」의 중립화를 구상중이라는 보도는 소련의 지중해진출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 하는 점을 드러내준다.
최근 「불가리아」에 이르는 철도를 부설하려고 노력중이라는 일부 보도와 아울러 소련의 이러한 외교적인 움직임은 미·영 등 전통적인 지중해세력이 「키프로스」사태를 조속히 수습하지 못하는 한 소련의 도전 앞에 상당한 고전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