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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노동유연성이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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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는 한국에서 국산 자동차가 생산된 지 50주년, 독자모델을 개발한 지 3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것도 50년 만에 세계 6위의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326억 달러 수출과 284억 달러의 흑자를 달성하는 등 자동차산업은 국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산업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일본.독일 등은 기술개발.시장확보 등에서의 우위를 앞세워 우리를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인도 등은 거대한 잠재시장을 바탕으로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은 한국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때에 대립적 노사관계가 우리 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1987년 이후 계속되는 파업은 엄청난 생산과 매출 차질을 초래하고 있으며,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대외 신인도에도 극심한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최근 일부 노조는 금품수수 채용비리 문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떼를 쓰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 노조는 그동안 노사합의로 진행되던 비정규직의 활용을 문제 삼아 노동부에 불법파견으로 제소하고 모든 비정규직의 완전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도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노동부도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불법판정을 내려 산업계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본원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적한 바와 같이 정규직 노동자의 과도한 보호로 인한 노동유연성 부족과 과중한 임금부담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고용조정.전환배치 등이 자유로운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모든 사항을 노사 간 합의에 의해 결정하게 돼있어 기업들의 비정규직 운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는 고용불안을 회피하기 위한 정규직의 동의하에 진행된 흐름이었다.

지난 54년간 무분규의 노사안정을 바탕으로 3년 연속 순익 1조엔 수익을 달성한 도요타의 경우도 전체 6만5000명의 근로자 가운데 약 18.6%인 1만200명이 비정규직이며 노조의 별다른 반발 없이 생산현장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확대, 고용의 유연화는 자동차 업계의 세계적 추세며 이를 거부할 경우 기업경쟁력 약화로 인한 대규모 고용조정이 불가피하다. 최근 경영이 나빠진 폴크스바겐사가 대규모 감원 대신 노사 간 합의로 2011년까지 임금을 동결하고 고용을 보장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규직의 임금조정, 원활한 공정별 전환배치 협조, 불가피한 경우 고용조정의 수용에 대해 노사 간에 진지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매년 반복되는 소모적인 임금협상을 미.일 업체와 같이 3~4년 주기의 임금협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임금인상 폭도 생산성 향상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가 구축돼야 장기적인 경영계획 수립이 가능하고 경쟁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를 '수소경제 시대'의 원년으로 규정하고 향후 10년 내에 상용화될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앞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생존 여부는 환경친화적인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안정이 절실하다.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자동차산업의 희망은 없어진다.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이 성장의 발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사화합 차원을 넘어 노사 일체적 문화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

남충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