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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도 위안부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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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1954년 5월 베트남-라오스 국경도시 디엔비엔푸. ‘붉은 나폴레옹’ 보응우옌잡 장군이 이끄는 월맹군은 56일간의 격전 끝에 프랑스군 진지를 함락시킨다. 진지에 진입한 월맹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포탄이 쏟아지는 최전방에 최고급 와인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게 아닌가. 병사 1만 명에게 먹이겠다며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4만8000병이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알제리·베트남 여자 18명이 떨고 있었다. 후방에서 데려온 성적 노리개로, 1차대전 때부터 프랑스군이 운영해 온 ‘작전용 이동매춘소(BMC)’ 여자들이었다.

 한·일 간의 민감한 이슈, 특히 위안부 얘기가 나오면 한국인들은 불처럼 달아오른다. 언짢은 말은 무조건 “망언”이다.

 ‘인신공격의 오류’란 게 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건 과거를 트집잡아 무조건 묵살하는 잘못이다. “철학자 베이컨의 이론은 절대 믿을 수 없다. 법관 시절 뇌물을 받았던 악당 아니냐”는 식이다.

 그러나 이게 현명한가. 한국인은 막무가내란 인상을 줄까 두렵다. 양식 있는 일본인들마저 등 돌리게 할 태도다.

 지난달 25일 “전쟁을 했던 어떤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고 독일·프랑스에도 있었다”는 모미이 가쓰토(<7C7E>井勝人) NHK 회장 발언이 나왔다. 불쾌하고 무례한 언사다. 그럼에도 ‘불편한 진실’일망정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게 슬기다.

 군내 매춘 조직을 둔 건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강제 성노예도 존재했다. 나치도 러시아·폴란드 등 점령지 길거리에서 여자들을 끌고 갔다. 독일군에게 몸 바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별도로 강제수용소 내에도 집창촌이 세워졌다.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는 여자 재소자들에게 몸을 팔게 강요했다. 그러곤 업무 성적이 좋은 재소자들에게 여자를 살 수 있는 특권을 줬다. 근로성과를 높이려는 술책이었다.

 그럼 모미이 발언이 사실이고, 그래서 위안부 건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대답은 “물론 그렇지 않다”다.

 우선 프랑스군 매춘부들은 스스로 몸을 던진 여자들이었다. 다수가 속아서, 또는 억지로 끌려가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로 살았던 위안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처럼 선량한 여성들을 끌고 가 성노예로 학대한 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뿐이었던 셈이다.

 독일도 그랬는데 왜 일본만 문제 삼느냐는 식 주장은 억지 중 억지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천인공노할 나치와 일본 모두 나쁜 거지 독일도 했으니 괜찮지 않으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최신호는 이렇게 못 박았다. ‘나치가 비슷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고.

 더욱 주목할 건 독일 사회는 나치의 비행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숨기기는커녕 순회 전시회를 열어 당시 끌려왔던 여성의 참상을 후대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나치의 만행을 부인하면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나 아베 내각은 강제연행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요컨대 모미이 회장 발언을 “망언”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 “나치와 일본군만이 강제로 여성들을 끌고 가 유린했는데 그나마 일본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똑똑히 대응할 일이다.

 한편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카노 마사시(中野正志)란 유신회 참의원은 “현재 한국 여성 5만 명이 성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국을 매도하는 발언을 했다. 의도도 문제지만 어느 나라보다 성적 착취가 심한 일본의 정치인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일본은 성적 착취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국가로 낙인찍혀 있다. 미 국무부는 2001년부터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 방지 노력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왔다. 각 나라를 4단계로 나누는데 일본은 3등급을 맞은 2004년만 빼고 줄곧 2등급 국가로 분류돼 왔다.

 일본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세계 각지에서 일본에 도착한 여성들은 곧바로 강제적 매춘에 끌려들어갈 위험이 높다. 그런데도 당국은 최소한의 인신매매 방지책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2001년 첫해 3등급을 맞은 후 2013년까지 20여 서방 선진국과 함께 늘 1등급 국가였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