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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짐단화하는 조총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북괴 공작원과 조총련맹원의 접선·공작에 의한 이번의 박 대통령 저격 사건은 무장「테러」라는 점에서 조총련 공작의 새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총련은 6·25당시 이미 「빨치산」훈련을 시킨 청년 맹원들을 밀선에 태워 전선에 침투시킨 경력이 있고 최근에는 『무장투쟁에 대한 간부들의 사상 동원에 철저를 기한다』는 방침아래 『사생활 정리』까지 지령하고 있어 무장 공작 자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조총련측 공작 활동은 실상 첩보 및 포섭 위주여서 「무장투쟁」은 선언적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번 사건을 통해 드디어 이의 실행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 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문세광의 저격 사건 분석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문세광은 저격 당시 권총을 빼 들고 『야!』하는 고함과 함께 통로를 돌진, 17m 전방서「서서 쏴」세로 사격을 했다. 이러한 자세는 모두가 유격대원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 조총련이 단순한 사격 훈련이 아닌 집단 특수 훈련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이 무장 훈련의 전모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6·25당시의 「빨치산」훈련과 관련.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도 북괴의 북송 및 화물 수송 선박인 만경봉호 선상에서 비밀 지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북괴 파견 공작원과 조총련맹원과의 비밀접선은 다각적으로 공작되고있다.
만경봉호는 많은 공작 「루트」중 한 가닥에 불과할 따름이다.
조총련 산하 동해상사 소속 송도환(9백99t). 수립 선박 소속 평양환(4백92t)을 비롯, 61년4월 북괴와 일본간의 수출입 직접 거래 인정 이후 평양을 왕래하는 특수 일본선 약1백척이 모두 공작원 수송·비밀 지령 등의 「루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 일본선이란 일본인 명의로 일본서 조달, 등록한 일본 선적이나 실권은 조총련계가 장악하고 있는 선박을 가리키는 것.
이들 특수 일본선은 북송선과 함께 적색 침투의 이동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조 무역회에도 가입하지 않은채 그중 10척 가량은 매월 2∼3회 일본과 북괴를 왕래, 표면상으로는 무역을 하면서 노동당 기관으로 지목돼있는 북괴의 중외 협동 무역 상사와 접촉하고있다.
특수 일본선 중 암약의 대표격은 역시 61년8월에 설립된 ▲수권 자본 5억「엥」▲불입 자금 2억1천5백만「엥」 ▲주주 5백명의 동해상사 소속 송도구. 이 배는 자유롭게 북괴와 왕래하며 ▲조총련·북괴와의 관련 물품 운반 ▲각종 출판물 및 문건 왕래 ▲공작인물 수송 등 중요 임무 외에 북괴의 비밀 공작금과 조총련 비용의 일부 송금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육 보조비 등 만 적십자 경로를 이용할 뿐 비밀 공작금은 이 같은 안전 선박편을 「루트」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추정에 의하면 69년의 경우 이 선박 「루트」편 송금액이 조총련의 비용 중 약15억「엥」에 이르는 것으로 돼있다.
공작금 송금이 이럴진대 비밀 공작원 수송은 더 밝힐 것도 없는 실정.
이들 선박을 통해 침투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드러난 공작원 사건만도 통계에 의하면 50년부터 70년말까지 49건에 이르고 있다.
연평균 2·5건 꼴로 대부분 노출되지 않는 공작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실제의 파견, 접촉 숫자는 엄청날 것이란 계산이다.
이들 노정 공작원 사건 분류를 보면 북괴 공작원의 파견자는 당·내무성·사회성·조통 등이 주역이나 조총련 자체의 공작원 밀출국 또한 7건에 이르고 있으며 공작 사명은 ▲재일 공작원 밀출국 및 왕래 ▲연락 ▲공작비 조달 ▲공작「아지트」설치 ▲첩보 공작 등을 띤 것으로 나타나있다.
▲권총을 굳이 일경 파출소에서 훔쳐 조달한 점 ▲여권도 문과 숙지사이인 「미끼꼬」에 부탁해서 만든 점 ▲권총을 구하러 「홍콩」까지 여행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진술 등 철저한 단독범행 위장술은 굳이 수사당국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이 같은 북괴 공작원과 조총련맹원간의 대남 파괴 집중 공작을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의 「홍콩」여행을 북괴 공작원과 접선, 적격 여부의 최종 심사를 받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북괴에 의한 조총련계 무장 활동의 「패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아뭏튼 북괴와 조총련의 공작에 의한 이번 사건으로 60년5월 조총련 전국 지방 본부 위원장 회의에서 이른바 『구체적 통일 공작사업』전개가 결의된 뒤 거물 공작원 침투 위주였던 그들의 대남 공작이 무장 공격으로 전술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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