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라는데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음악 스킨십 해봅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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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23면

2014년 그래미 시상식에선 나일 로저스, 페럴 윌리암스, 다프트 펑크(왼쪽부터) 등 선후배 가수들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가수 비가 자신의 신곡 ‘라송’의 후렴구 ‘라~라라라’ 부분이 태진아와 비슷하다는 인터넷 이야깃거리를 실제 무대로 옮겼다. 태진아가 직접 그 부분을 부르고 관광버스 춤을 같이 추는 합동 무대가 ‘애들’이 주로 보는 가요차트 프로그램에서 펼쳐졌다. 원로 가수로 대접받는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아이들 무대에 끼어드는 잠깐 이벤트가 이름도 거창해 보이는 ‘컬래버레이션 무대’냐고 비웃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신선한 이색조합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젊은 세대는 약간의 트로트 향기를 느끼며 그것이 자신들이 즐기는 음악과 동떨어지기만 한 것이 아님을, 나이 든 세대들에게는 가요무대나 7080뿐만 아니라 어린 친구들과도 아직 한 무대에 설 수 있음을 확인한 쾌감 같은 것이었으리라 본다.

컬처#: 중·년 가수와 젊은 가수 소통에 대하여

세대 간의 ‘컬래버레이션’의 진수가 펼쳐지는 곳은 미국의 음악 시상식장이다. 올해도 얼마 전 2014 그래미 어워즈에서 장르와 세대를 넘나드는 합동무대들이 줄을 이었다. 올해 최고 히트곡 ‘블러드라인’의 로빈 시크는 80년대 밴드 시카고와, 클래식계의 수퍼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은 20여 년 만에 그래미 무대에 등장한 메탈계의 전설 메탈리카와 명곡 ‘One’을, 60년대부터 지금껏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경을 놓치지 않는 캐롤킹 역시 자신의 히트곡 ‘뷰티풀’을 사라 바렐리스라는 신예와 듀엣으로 피아노를 치며 불렀다.

팝의 여왕 마돈나는 신인상 수상자 매클레어가 동성애의 애환을 랩으로 풀어내며 객석에서 게이-스트레이트 커플의 합동 결혼식을 펼치자 뒤이어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요’라고 부르짖듯 자신의 히트곡 ‘오픈 유어 하트’를 이어 부르며 찡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하이라이트는 이날 최고의 스타였던 다프트 펑크의 무대. 첨단 일렉트로닉 히트곡 ‘겟 러키’로 시작해 이 음악을 함께 만든 나일 로저스가 70년대 밴드 ‘쉭’에서 히트시킨 ‘르 프리크’, 그리고 거장 스티비 원더의 60년대 곡 ‘어나더 스타’까지를 디스코 리듬 하나로 꿰뚫으면서 메들리로 엮어냈다(사진). 객석에선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 비욘세와 브루노 마스, 심지어 근엄해 보이던 오노 요코까지 전부 일어나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흥겨움을 뿜어내는 장관이 펼쳐졌다.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음악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흐뭇한 구경거리였다.

대중문화에서의 세대단절은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전 세대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일이 확실히 늘어났다.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등을 통해, 이전 미사리 카페나 가요무대, 7080 같은 식으로 끼리끼리만 즐기는 어둠침침한 옛날 노래가 아니라 요즘 세대들도 존경해야 할, 충분히 존경할 만한 음악이며 뮤지션이라는 걸 조금씩 강조한다. 조용필 같은 수퍼스타가 지난해 다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미 같은 무대를 볼 때마다 우리도 좀 더 자연스러운 세대 간의 결합을 종횡무진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들 역시 스티비 원더나 캐롤킹 같은 뮤지션들을 말도 못하게 존경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들은 ‘언터처블’이 아니라 저렇게 젊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그것도 완벽하게 음악적으로 이물감 없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음악적 쾌감을 안겨준다.

그에 비하면 가수들을 멀찌감치 신전에 모셔놓듯 혼자 높은 곳에 앉혀놓고 후배들이 헌정의 무대를 일방적으로 바치는 ‘불후의 명곡’은 어쩌면 선배들을 불필요하게 신성시하고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곡 정도는 신나게 같이 부르면서 어떻게 새로운 세대들과 어울려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조용필도 “가끔 사석에서 후배들을 불러 같이 노래 부르며 어울려 논다”고 방송에서 말하곤 했는데, 가수들이 입을 모아 ‘존경한다’고 말하는 모습 말고 그런 자연스러운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더 보고 싶기도 하다. 이전 세대에 대한 ‘당위적인 존경심’보다는 ‘자연스러운 음악적 스킨십’을 통해 그 즐거움을 공감할 수 있는 멋진 무대를 한국 쇼 프로에서도 더 많이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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