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의 시대공감] 경제의 법칙 vs 인생의 법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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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31면

대학에 다니면서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경제학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닌 야간 대학생 시절,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건너뛰고 달려가도 수업에는 늘 지각이었다. 첫 시간 강의를 제대로 듣는 날이 드물었던 그때 첫 과목이 바로 ‘경제학원론’이었다. 가까스로 과락(科落)을 면하고 학기를 마쳤다. 4년 대학 시절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과목이었다.

그런 경제학원론 강의 중에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개념 중 하나가 ‘한계효용’이었다. 어떤 상품의 소비량을 늘릴 때마다 늘어나는 효용이다. 예를 들면 배고픈데 밥 한 숟갈씩 먹을 때마다 늘어나는 만족도가 ‘매(每)’ 밥숟갈의 한계효용이다. 그리고 매 숟갈마다의 한계효용을 합치면 다 먹은 밥의 만족도인 ‘총효용’이 된다.

이 개념을 늘 삶에 적용시켜 보았다. 예컨대 살면서 이루는 성취나 발전의 단계마다 늘어나는 만족을 한계효용의 개념으로 보는 식이다. 이 한계효용의 합(合)이 자기 인생의 총효용에 가깝지는 않을까. 그래서 매 단계별 한계효용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아닐까. 어떤 일을 하거나 성취를 할 때마다 늘어나는 만족 또는 한계효용의 합을 더하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인 불만 또는 한계비효용을 차감한다면 행복의 값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올라간 정도, 갖고 있는 재산에서 늘어난 부분이 될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큰 평수의 아파트보다 단칸방 월세에서 시작한 신혼부부가 전세를 거쳐 작은 평수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이 점차 줄어든다고 가르치고 있다. 소위 ‘한계효용 체감(遞減)의 법칙’이다. 배고플 때 첫 숟갈의 밥이 주는 효용이 가장 크고 먹을수록 뒤에 먹는 숟갈의 밥이 주는 효용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더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배가 부른데 더 먹는다면 마이너스 만족을 줄 수도 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답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발전이나 성취 단계별로 느끼는 효용은 단계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체증(遞增)’할 때도 많다. 그렇게 한계효용이 늘어나면 인생의 총효용은 당연히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힘든 처지를 원망할 필요가 없다. 자기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어려운 환경을 ‘위장된 축복’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든 상황이 한계효용을 늘릴 룸(room)을 준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면 인생의 총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만 명이 넘는 대학생을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었다. 많은 청년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힘들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들에게 강조했던 꿈과 열정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각자의 한계효용을 높이도록 노력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숙제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한다. 개개인의 한계효용을 높이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나 여건을 개선하는 문제다. 무엇보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들고 소득과 교육격차를 줄여야 한다. 계층 간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을 촉진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특히 필요하다.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행복시대’는 다같이 80점을 맞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의 현재 점수를 올리려는 것이다. 개개인의 한계효용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추진했던 140개 국정 과제가 국민이 변화를 느끼는 성과를 만들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국민의 마음을 얻었는지, 땀은 흘렸지만 고지(高地)를 향해 뛴 것이 아니라 체육관 러닝머신 위에서 뛴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20대 초반, 직장생활로 경제학 성적이 낮았다는 변명에 대한 업보(業報)를 나는 평생에 걸쳐 받고 있다. 30년이 넘는 경제관료 생활을 하며 현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국민 삶에서 한계효용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 경제관료의 임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보다 ‘성과’로 이야기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답을 내놓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기획재정부 2차관과 예산실장,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다. 상고 졸업 후 은행과 야간대학을 다니며 행정·입법고시에 합격했다. 미국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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