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서 평민으로…닉슨 백악관 떠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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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리처드·닉슨」전 미 대통령은「포드」부통령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2시간 앞둔 8일 상오 10시3분(한국 시간 9일 하오 11시3분)부인과 두 딸을 동반, 백악관을 떠나 한 때 서부 백악관으로 불리던「캘리포니아」주「샌틀러멘티」별장으로 떠남으로써 파란 많던 정치 생애에 종지부를 찍고 평범한 일개 시민으로 돌아갔다.
「포드」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던 바로 같은 시각에 그가 마지막으로 탑승한 대통령 전용기장에서 일개 시민으로 돌아간「닉슨」전 대통령은 이날「캘리포니아」 주「엘토로」공군 기지에 도착, 그를 맞이한 3천명 군중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면서『나는 앞으로도 계속 평화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강조하고『앞으로는 모든 미국 시민들 가운데서 이해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청색「싱글」차림에 파란 색깔을 띤「넥타이」를 매고「패트」여사와 두 딸, 그리고 두 사위와 함께 백악관「이스트·룸」에서 각료들과 그들의 부인, 그리고 백악관 보좌관들에게「닉슨」은『영어에는 내 감정을 표현할 말이 없다』면서『오르브와』(다시 만납시다)라는 「프랑스」말로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고별 인사를 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억눌렀다. 눈에는 눈물이 괴었어도 입으로는 계속 웃으려고 노력했다. 많은 각료의 부인들과 백악관 관리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키신저」의 표정은 침통했고「슐레징거」는 애꿎게「파이프」만 뻑뻑 빨았다.
「닉슨」은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는 두 눈 가득히 괸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패트」여사는 일그러진 얼굴을 살짝 돌렸다. 「닉슨」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어느 누구도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사람은 없다. 나의 어머니는 성자였다.
나는 나의 두 형제가 폐결핵으로 죽었을 때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나머지 4남매를 키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닉슨」은 이미 간 밤에 사임 연설을 한 뒤 가족·각료, 그리고 백악관 관리들 앞에서 목을 놓아 통곡했다.
「닉슨」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할 때 당신이 마주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 한 그들은 승리자가 될 수 없지만 당신이 그들을 마주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당신자신의 파멸을 가져온다』고 충고했다.
「오키스트러」가 그의 요청에 따라「뮤지컬」영화 음악『오클라호머』와『남태평양』등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며 마치 축하 「파티」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으나 참가자들은 한결 같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마지막으로 고별인사가 진행되는 동안 웃음은 꼭 한번 터져 나왔다. 그것은「닉슨」이 야인으로 돌아가면 체불 세금 약50만 「달러」와 기타 빛을 갚을 길이 걱정이라며『내가 부자라면 얼마나 좋아』라고 말했을 때였다.
작별 인사를 끝내고 복도에서「포드」신임 대통령을 만난「닉슨」은『오, 대통령』하며 그를 포옹했다.
고별 인사를 마친「닉슨」은 바로 백악관 잔디밭에서 두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부인·큰딸·사위「에드워드·콕스」만을 데리고「헬리콥터」를 탔다. 두 시간 후에는 대통령이 되는「포드」부처가 손을 들어 그들을 환송했다. 뒤 처진 둘째딸「줄리·아이젠하워」는 남편「데이비드」의 어깨에 의지하여 간신히 심신의 균형을 유지했다.
「닉슨」은 4백 명의 환송객이 기다리는 「앤드루즈」공군 비행장에서 대통령 전용 비행기인「공군 제1호」기를 타고 10시15분 이륙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서부로 나르는 도중 구름 위에서 신분이 바뀐다. 「엘토로」공군 기지에서 그가 내릴 때는 그는 이제 미국 대통령 각하가 아니라 평민이다.
「닉슨」은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디어도·루스벨트」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것은 20대의「루스벨트」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당했을 때 기록한 일기다.
『그녀는 얼굴과 자태도 아름다웠지만 그것보다도 정신이 더 아름다웠다. 그녀는 한 떨기 꽃처럼 성숙했다가 아름다운 꽃처럼 죽었다…그녀가 어머니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보람찬 생활이 막 펼쳐지려고 했을 때 돌연히 무서운 운명이 그녀에게 닥쳐왔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을 때 광명은 나에게서 영원히 사라졌다.』
「닉슨」은 자기 생명의 빛이 영원히 꺼졌다고 절망했던「루즈벨트」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일화를 소개함으로써「닉슨」자신의 생명의 빛이 아주 꺼져 가는 것이 아니라고 절규한 것이다.
『변호사 시험에 낙제하고 선거에서 낙선하고 패배를 맛볼 때 만사가 끝장 났다고 절망하지만 그런 시련은「어떤 시작」일뿐』이라고 패장「닉슨」은 자위했다.
『당신이 계속 밑바닥에 있어 보았을 때 비로소 정상에 오르는 장엄함을 안다』고「닉슨」은 말했다.
「닉슨」은 간 밤의 사임에서도 그랬듯이 오늘의 고별 인사에서도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판단 착오, 판단 착오』만을 인정했다. 평민으로서의 그의 장래가 평온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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