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젊은 지성의 대열 산하를 누빈다|"새 물결 운동" 심는「조국 순례 대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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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녀 학생 천7백여 명 참가>
젊음과 지성의 대열이 조국의 산하를 누빈다. 통「기타」·청바지의 흥겨운 여행이나 등산은 결코 아니다. 젊은이들이 역사의 현장을 두루 답사하여 겨레의 슬기와 조국의 숨결을 직접 보고 느끼며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고 참된 조국애를 기르기 위해 여름 방학을 틈탄 고행의 길에 오른 것이다. 이름하여「조국 순례 대 행진」-.
「유네스코」한국 위원회 주최로 지난 5일 상오 서울·보은·남원·합천 등 전국 4개 지역에서 각각 발대식을 갖고 순례 길에 나선 이들은 전국 49개 대학 14개 고교 1천7백29명의 남녀 학생들. 이 가운데 여자가 8백3명이다. 이들은 오는 15일까지 11일간의 예정으로 최종집결지인 부여 백마 강변을 향해 매일 20km의 도보 행진을 계속 중이다.
서울(8백94명)·충청(2백78명)·호남(2백42명)·영남(3백15명)등 4개 반으로 나뉘어 반별로 다른「코스」를 따라 행진해 온 대원들은 10일 상오 대전에 도착, 충무 체육관에서 김종필 국무 총리의 격려를 받으며 합류 식을 가졌다.

<낮에는 행진 밤엔 대화·토론>
서울 서강대를 출발한 서울 반은 평택·온양·조치원을 거쳐 대전에 닿았고, 보은에서 옥천·영동을 거친 충남 반과, 남원에서 장수를 경유한 호남 반 및 합 천에서 거 창을 거친 영남 반은 지난7일 전북 무주군 읍내 리에서 일단 합류, 이웃 용포리 잠 두 마을 앞 백사장에서 야영한 뒤 금산을 지나 대전에 도착한다. 서울 반은 현충사(충남 아산 군)를 참배, 충무공의 거룩한 순국 정신을 배웠고, 3개 지방 반은 칠 백의 총(충남 금산군)을 답사, 임진왜란 때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들의 애국적인 투혼을 추모했다.
이들은 폭 양과 폭우를 헤쳐 강행군을 계속하는 동안 오곡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8월의 푸른 들판과 메마른 산하, 그리고 초라한 초가집들을 보면서 우리의 선 조들이 5천년을 지켜 왔고 또 우리 후손들이 영원히 키워 나갈 이 조국의 산하를 둘러보았다. 이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낮에는 발이 부르트도록 행진을 하고 밤에는 강연을 듣거나 대화를 통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했다.
연세대 3년 김배윤 군(22)은『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이 땅이. 바로 내가 영원히 사랑할 조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고 했고 숙명여대 2년 이명희 양(19)은『도보 행진이 몹시 힘들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이 곧 나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양 넓혀 참된 조국애 길러>
「유네스코」학생 협회 회장 부중환 군(23·외국어대 4년)은『발이 부르 터지고 발목이 시도록 조국 땅을 밟음으로써 인격과 교양의 폭을 넓히고 참된 조국애를 기르며 자각과 탐구, 대화와 협동, 실천을 통한「새 물결 운동」을 전국 곳곳에 심어 주는 것』이 순례 행진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조국 순례는 화랑 정신의 계승이자 독일 청년 남녀의「반더포겔」(Wandervogel)운동과「이스라엘」청소년들의「가드나」(GADNA)운동 등과도 흡사하다.
화랑 정신이 신라의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됐던 것처럼「반더모겔」은 1차대전후 잿더미 속의 독일 재건에 크게 기여했고 옛「로마」군으로부터 받아 온 민족 박해의 현장을 순례하며 조국애를 기르는「가드나」는「이스라엘」의 오늘을 지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출발 후 6번째의 숙박 지인 충남 대학에서 하룻밤을 보낸 순례자들은 보급 차량으로 날라다 준 아침식사를 마치면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마지막 집결지인 부여를 향해 다시 발견을 옮겨야 한다.

<백마 강변서 민속 축제 벌여>
마지막 남은「코스」는 계룡산 국립 공원 입구와 공주 읍을 거쳐 백마강변까지 이르는 2백여 리 길. 최종 목적지 도착은 오는 14일 낮12시쯤으로 강변 모래사장에 설령 작업을 마치면 수려한 자연을 마음껏 호흡하며 춤과 노래·민속놀이 등 다채로운 기념 축제로 대행진의「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15일 상오에는 부여 박물관과 부소산 공원을 답사, 찬란했던 백제의 옛 문화를 되새겨 보고 광복절 기념식을 가진 뒤 하오에는 전국 대학생들에게「새 물결 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하는「메시지」낭독을 끝으로 11일간의 행진을 모두 마치게 된다.「유네스코」한국 위원회 김규택 사무총장은『이번 행사가 한국 학생 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의 이 같은 의지가 꽃 필 수 있도록 북돋워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면 독서, 둘이면 대화, 셋이면 합창·넷이면 운동』-. 하늘색「유니폼」「베이지」색 모자에 20kg의 배낭을 걸머진 젊은 순례자들은 옛 백제의 화려했던 고도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글=오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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