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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 내달 11일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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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영 서울여성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지난달 초순 독일 베를린 영화제에서 유쾌한 경험을 했다. 변영주 감독의 '밀애'에 대한 현지 반응이 뜨거웠던 것이다.

해외 영화제 호평이 별다른 얘기가 되지 않을 만큼 충무로가 성장한 건 사실이나 한국 여성의 현실을 밀도 있게 그린 영화가 국제적 관심을 끈 것은 드문 일이기 에 그만큼 반가웠단다.

업무상 외국 영화인과 자주 만나는 그는 이제 서구의 평론가에게 할 말이 생겼다고 했다. '예술'을 위해선 성폭력도 쉽게 용서하는 게 한국의 수준이냐고 비아냥대던 그들에게 이제 새로운 한국영화를 보고 말하자는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가 '밀애'를 올 여성영화제 목록에 포함시킨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여성 감독의 눈으로 오늘의 지구촌을 바라본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서울여성영화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다음달 11~18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등 세 곳에서 열린다. 역대 최대 규모인 19개국 1백20여편이 상영된다.

개막작은 박경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소'로 결정됐다. 이 영화는 '세 친구''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박감독은 임감독의 '세 친구'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두 감독의 우정이 화제가 됐다.

'미소'는 시야가 계속 좁아져 결국 실명에 이르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여류 사진 작가의 얘기다. 실명이라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작가의 열망을 통해 삶의 부조리와 고통을 성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제 측은 "자본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제작자부터 일선 스태프까지 여성들만의 열정을 모아 만든 '미소'는 한국영화의 저력을 입증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하일라이트는 최근 2~3년간 세계 각지의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모은 '새로운 물결' 부문이다. 남녀의 성차를 뒤엎는 도발적인 작품,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극 수용한 영화 등 젊은 영화인의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말 거리에서 세계화의 압력에 저항했던 여성 아나키스트들의 실제담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베를린의 여걸들'(감독 바바라 토이펠), 사이버 공간에서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여성을 통해 홍콩 여성의 애정과 욕망을 낚아챈 '애정성시'(야우 칭), 여장 남성인 드래킹의 공연 현장을 찾아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카메라를 들이댄 '비너스 보이즈'(가브리엘 바우어) ,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여배우.가정주부.전기공.기업가 등의 일상을 교차시킨 '축복'(레이첼 더글러스) 등 37편이 소개된다.

경쟁 부문인 '아시아 단편 경선'도 주목된다. 외국 작품 여섯 편을 포함해 총 열여덟 편이 실력을 겨룬다. 남녀.모녀 등 소소한 가족 관계부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까지 지구촌 여성의 일상을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표현했다. 남녀의 경계, 여성의 자아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캐나다 감독 레아 폴은 감독 특별전에 초청됐다.

예매는 오는 28일부터 인터넷(wffis.or.kr, ticketpark.com)과 전화(1544-1555)로 받는다. 편당 관람료 5천원. 아이를 동반하는 주부들을 위해 놀이방도 준비됐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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