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외딴섬 염전노예 2명 … 수년 만에 극적 구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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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2만㎡(약 6000평) 염전 너머 여름용 감색 운동복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 표정은 어두웠다. 발뒤꿈치가 훤히 보이는 구멍 난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김XX씨 되시죠?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어…어? 지…진짜 경찰인가?”

 지난달 23일 소금구매업자로 위장한 서제공(57)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이 실종자 김모(40)씨를 처음 만난 순간이다. 서 팀장은 전남 목포 신안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여를 달려 막 외딴섬에 도착한 터였다. 이 섬엔 800가구 2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는 “현대판 염전노예를 본 기분이었다”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5급 시각장애인 김씨는 2012년 7월 이곳의 염전 운영자 홍모(48)씨에게 단돈 100만원에 팔려왔다. 서울 영등포의 한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직업소개업자 이모(63)씨의 꾐에 빠져서였다. 염전엔 2008년 팔려온 지적장애인 채모(48)씨도 있었다. 그 역시 목포의 한 직업소개소 직원 고모(70)씨에게 속았다고 한다. 거래가는 30만원.

 이들에게 염전은 감옥이었다. 시퍼런 바다는 수의(囚衣)나 마찬가지였다. 소금을 내고, 소금을 담는 일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루 다섯 시간도 못 자고 폭행과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세 차례 탈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김씨는 “도망치는 걸 마을 주민들이 보고 홍씨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렵사리 펜과 종이를 구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밤마다 한 글자씩 채워간 두 장짜리 편지에는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찾아와 달라. 올 때는 소금업자인 것처럼 위장해서 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회를 보던 김씨는 지난 1월 읍내에 이발을 하러 나갔다가 우체국에서 몰래 편지를 부쳤고 이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즉각 아들의 가출신고를 했던 구로서를 찾았다. 채씨 5년2개월, 김씨 1년 6개월의 강제 노역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구로서 관계자는 6일 홍씨 등 3명을 영리약취·유인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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