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수성이 더 어렵다 … 여전히 '위기'에 무게 둔 삼성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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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부회장

삼성전자가 연일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가운데서도 최고경영진은 여전히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방심하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수성(守成)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라는 평가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스마트폰 4400만 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31.6%를 기록했다고 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북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애플은 시장점유율이 2012년 37.6%에서 지난해 36.3%로 내려앉아 처음으로 역성장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4.7%포인트까지 차이를 좁혀 애플의 본고장인 북미 시장에서도 스마트폰 1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그간 삼성전자를 괴롭혀온 특허전쟁에 대한 울타리도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세계적인 시스템통합(SI) 업체 시스코와 특허공유 계약(크로스 라이선스)을 했다. 지금까지 갖고 있는 특허는 물론 앞으로 10년간 출원될 특허까지 공유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27일에는 구글과 같은 내용의 특허공유 계약을 했다. 구글과 시스코 또한 4일 특허공유 계약을 맺어 삼성-구글-시스코 간 특허 삼각동맹이 성립됐다.

 삼성은 미국에서 IBM에 이어 매년 특허출원 건수 2위다. 구글도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되파는 과정에서 얻은 통신특허를 비롯해 5만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시스코 또한 미국 등록 특허만 9700여 건이다. 이들 3개사는 이번 특허 삼각동맹으로 세계 최대의 특허 풀을 보유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이번 특허 동맹으로 지난 3년간 지루한 특허전쟁을 벌여온 애플을 따돌릴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시스코 특허 담당 댄 랭 부사장은 “최근 지나친 소송전으로 혁신이 제약당하고 있다”며 “이번 계약을 통해 시스코와 삼성이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은 여전히 ‘위기’에 무게를 뒀다.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주주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도전정신을 발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권 부회장은 전날 그룹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는 “삼성을 견제하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올 초 신년사에서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현재 모습만 보면 위기 강조는 엄살처럼 보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스마트폰과 TV·메모리반도체 세 분야에서 모두 세계 1위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메모리반도체는 1993년 1위에 올랐고, TV는 2006년, 스마트폰은 2011년에 정상에 등극했다. 삼성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해 보이는데도, 위기감이 거듭 강조되는 것은 1위 수성에 대한 ‘현실적 위기감’으로 풀이된다.

 사실 세계 1위 삼성의 올해 앞길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일본의 엔화 약세와 같은 외생 변수와,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같은 복병들이 숨어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도달해 삼성이 태블릿PC나 웨어러블 장치 쪽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면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에게 금방 따라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팎으로 위기가 겹치는 상황이니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이를 방지하려는 것은 경영진으로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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