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에겐 지면이 없다|문제점 많은 문학지의 문인양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학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매년 중앙과 지방의 여러 신문사가 실시하는「신춘문예」행사에 응모하는 문학지망자의 수효가 줄잡아 3만 명에 이른다는 데서 여실히 증명된다.
그러나「데뷔」이후 완성된 문학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어려울 따름이지 실장 문학지망생들이 이른바「신인」으로서 문인행세를 할 수 있는 문호는 널리 개방되어 있는 셈이다.
10여 개의 문학지들(계간 포함) 이 추천 혹은 신인상의 형식으로 매달 평균 10여명씩의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는 신인을 1년에 약 1백만 명으로 추산할 때 이 숫자를 한국문인협회에 소속돼있는 전체 기성문인 약 1천명과 비교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이 신인들이 제대로 문학활동을 벌여 짧은 시일 내에 기성문인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신춘문예」출신 신인들과 함께 문단인구는 매년 2백명 가량이 늘게되며 10년 후면 현재 문인인구의 3배로 불어나게 된다.
문단인구가 불어나는 것을 반드시 좋지 않은 현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각 문학지를 통해「데뷔」한 신인들이 대부분「데뷔」이후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것은 문학지의 추천 혹은 신인상제도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문학지에 관계하지 않고 있는 몇몇 문인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그 결함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단편 한두 편 혹은 짧은 시 두어 편을 가지고 한 사람의 문학적 재능을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이며 둘째는 작품심사를 노대가에게만 위촉하기 때문에 작품 경향이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맞도록 천편일률적이고 세째는 일부 문학지들의 발행인들이 문단에서의 자파 세력 확장을 위해 작품위주가 아닌 인물위주로 신인을 배출시키는 것 등이다.
일부 문인들의 이러한 견해가 사실이라면 문학지를 통해「데뷔」하는 문인이란 한낱 소모품 문인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듯 실제로 문학지를 통해 등장하는 신인가운데서 계속적인 작품활동으로 문인대접을 받게되는 신인은 고작 20%선이다. 이것은 문단인구는 많고 발표지면은 제한돼 있는 우리문단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학지출신 신인들의 공통된 고민은「데뷔」후의 계속적인 작품활동으로 평가를 받고 싶지만 발표지면을 쉽사리 얻을 수 없다는데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 문학지추천 신인시인은『추천을 받고 나서 부푼 마음으로 공들여 쓴 작품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으나 다른 문학가는 말할 것도 없고 추천해준 문학지에서조차 여러 가지 핑계로 작품을 실어주지 않더라』고 푸념한다.
물론 문학지들은 추천 혹은 신인상작품을 모집하면서 추천된(혹은 당선된)신인은 기성문인과 똑같이 대우하며 계속 작품발표의 기회를 줄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지 못하는데 대해 문학지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데뷔」이후의 작품들이「데뷔」작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얼핏 신인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이 그들 자신의 역량 때문인 것처럼 들리지만 엄밀히 따지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우선 그처럼 많이 배출해 내는 신인들에게 골고루 작품발표의 기회를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인의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문학지에서 추천된(혹은 당선된)신인의 작품을 게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도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우선은 지면사정 때문이다.
결국 문학지가 신인문학지들을 아무리 많이 배출해내도 그것은 다만「데뷔」시키는데서 그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양적으로 많은 신인을 배출하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1년에 단 한사람의 신인을 내더라도 능력 있는 신인·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것이 보다 뜻 있는 일일 것이다.
또 일단 추천해놓은 신인들에게 문학지들이 정기적으로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어야하며 그 방법으로는 1년에 한번씩이라도 추천문인특집을 마련하고 신랄한 비평을 가해 신인들이 경쟁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도록 이끌어 줄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정규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