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사관의 흉내」아니다|국사교과서의 평을 보고 윤병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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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년에 새로 씌어진 국정국사교과서에 대한 평이 나오고 있다. 그 교과서의 집필자의 한 사람으로서 뿐 아니라 그보다도 국사를 공부하는 한 학도로서도 오류가 있으면 송구하게 여기고 마땅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초판에 완벽한 책이 되기 어려운 이유뿐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자라나는 국민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히 옳은 평을 받아들여 보다 나은 책으로 만들어 교육시켜야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평 중에는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도 있다. 한 예로 「동학혁명운동」(이 술어에도 여러 이견이 있다)을 들어본다. 『교과서에서는 이를 「동학혁명운동은 안으로 붕괴하고 있는 조선봉건사회를 부정하여 자율적 개혁을 도모하였고, 밖으로 외국의 침략을 몰아내는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었다』(고176·177면)하고 또한 그 끼친 영향을 설명하는 중에『일본이 침입하는 구실을 주어 마침내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하였고 안으로 강제적인 갑오경장을 단행하게 하였다』(고178면)라는 기술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하여 P교수는 동학 난은 중국의 청말 홍수전란과 같은 것으로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변란인데 어째서 왜곡하여 찬양하는 투의 기술을 하였느냐 하는 것이었고, K교수는 「동학혁명이 민중의 자율적인 근대화운동인데 왜 청일전쟁과 관련시켰고, 갑오경장은 동학혁명의 근대화정신에 반영된 것인데 어째서 강제적 개혁이라고 강조하였느냐고 평하였다. 그리고 이어 교과서는 주체적 민족사관에 실패한 것이라는 비난도 하고 심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사관을 버리지 못한 소이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어떻게 기술되어야 주체적 민족사관이 정립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작금에 나온 단군신화와 관련된 평 중에도 이와 같은 유의 것을 볼 수 있다. 평이 담긴 성명서 중에서『단군 조선의 l048년과 부여조선 164년과 또 기자조선의 928년 합2140년을 빼어 버리고 다만 중국 연 나라 사람인 위만이 우리 역사의 창시자인 것처럼 되어있다』라고 하면서 『이것은 일제식민지사관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초·중·고의 어느 교과서에도 위만을 우리나라의 창시자라고 쓴 곳이 없을 뿐 아니라 위만이 전의 고조선역사를 빼어버린 대목도 없다. 도리어『우리역사를 2천년으로 줄였다』는 주장과는 달리 종래의 교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몇 만년전인 구석기시대까지 소급하여 기술되었다.
그리고 단군신화에 대하여도『삼국유사』등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하여지는 내용을『환인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생각으로 인간생활에 관계된 비·곡식·생명 등을 각기 주관하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내려와 신시를 건설하고 백성을 다스렸다.
그러던 중 곰이 사람되기를 원하므로 곰을 여자로 변하게 하고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바로 이 단군왕검이 서기전 2333년에 아사달(지금의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나라를 세웠다』(중9면)라고 인용까지 하면서 위만조선이전의 고조선을 설명하였다.
또 이어서『이와 같은 건국신화가 이루어진 것은 바로 그 시대의 여러 형편을 신비스러운 내용으로 표현한 것』(중9면)이라고 사실성까지 인정하고『우리민족은 이 건국신화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고 까지 논급하였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신화적인 요소와 사실성은 앞으로도 더욱 깊게 학문적으로 연구가 진전되어 고조선이해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보이는 여러 국난 중에 민족의 주체의식을 높여준 귀중한 사실을 밝히는 중요과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위서로 밝혀진『단기고사』나 대종교의『삼일신화』(대종교의 굳은 민족의식과 그의 항일독립운동의 큰 활동 사실 등은 이와는 별개 과제이다) 등까지 들면서「식민지사관의 흉내」라고 몰아세우는 일은 아무래도 오늘날 국민의 역사의식을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식기반 위에 올려놓아 현대 우리문화를 건설할 수 있는 정신적 원동력을 찾아 외세의 영향에도 의연할 수 있는 주체성의확립을 바라는 시점에서 도움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부연할 것은 교과서에서 단군왕검을 신화로 다루게된 것은 1963년 우리나라 원로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학자가 모인 국사교과서 요강의 통일을 위한 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과거의 교과서도 모두「단군신화」라는 항목으로 되어있다. <국사편찬 위 조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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