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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 유학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캐딜랙 」승용차라면 미국에서는 최고의 신분의 상징이 된다. 가장 값이 비싸고 「사이즈」가 가장 큰 이 차는 아무나 탈수 있는 게 아니다. 「캐딜랙」을 살 만한 사람이면 이보다 작고 값도 헐한 다른 승용차를 몇 대쯤은 따로 가져야 한다. 「캐딜랙」은 원래가 사교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캐딜랙」은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의 꿈의 대상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미국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꼭 한번은 「캐딜랙」을 탄다. 미국의 모든 장례사는 「캐딜랙」을 영구차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죽어서나 이루어지는 셈이다.
기이한 것은 그런 「캐딜랙」을 가끔 흑인 빈민가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흑인과 「캐딜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싸구려 「아파트」에 살면서도 월부로 「캐딜랙」을 사서 「뉴요크」의 고급 「아파트」가가 아닌 빈민가에 차를 몰고 다니는 흑인의 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학대받고 있는 흑인들의 심한 열등감을 애써 잊어버리려는 야릇한 전시 효과 심리인 것이다. 따라서 「캐딜랙」을 몰고 다니는 가난한 흑인에게는 오히려 한 가닥 동정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캐딜랙」을 타고 다니는 것은 가난한 흑인들만은 아닌가 보다. 미국에 가 있는 한국의 일부 특수층 자녀들도 「캐딜랙」을 몰고 다닌다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분명 유학생이 아닌 유학생일 것이다. 두어 세대 전에는 흔히 외국에 나가 배우는 것을 유학이라 했다. 꼭 노는 둥 마는 둥 배운다는 뜻에서는 아니었다. 몹시 겸허한 뜻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누구 나가 유학이라 부른다. 통계로는 지난 73년 6월까지에 1만 4백명이 미국에 배우러 갔다.
정식으로 그들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외화란 1백「달러」의 준비금에다 편도 여비, 그리고 매달 송금이래야 3백「달러」의 생활비밖에 안 된다.
3백「달러」중에서 「아파트」월세 1백「달러」를 빼고 음식값·책값 등을 빼고 나면 호주머니는 늘 텅텅비게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최저의 생활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2만원, 최고급 봉급생활자의 반달 월급보다는 많다. 피보다 값진 돈이다. 더군다나 아무나 할 수 있는 미국 유학도 아니다. 그 돈으로 배우지 않고 논다면 천벌이라도 받을 만할 것이다. 「유학」이 「유학」으로 바뀐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런 유학생들 사이에서 2만「달러」짜리 차를 타고, 월세 1천「달러」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밤이면 한끼에 20∼30「달러」가 넘는 곳에서 먹고 마시고 하는 유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현지에 나간 대사의 입을 통해 개탄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송금 받고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자녀에게 미국의 부호들과도 맞먹을 만한 호사를 시킬 수 있는 그들의 부모는 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라의 정치가 잘 되어 있을 때는 가난이 창피스런 일이 된다. 그러나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울 때에는 돈 많은 게 도리어 창피가 된다.』 공자의 말이다. 도시 우리네 호사 유학생들은 그 어느 쪽을 입증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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