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외교전의 현장…동남아|의원사절 방문 계기로 살펴본 태·버마·싱가포르·네팔 등지의 현황|성병욱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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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 도처에서 우리는 북괴와의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외교적 대결은 특히 아·아·중동중립국이 심하지만 차차 중공의 입김을 타고 태국·호주·중남미 각국 등 자유세계에까지 외교전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몇달 전부터 남북한은 각기 20개 가까운 친선사절단이 전세계의 반정도의 나라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방중이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활동중인 우리 사절단은 한반도 및 세계평화유지에 기초를 둔 우리의 평화 외교노력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남북의 사절단 활동은 일단 올 가을「유엔」총회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유엔」총회는 매년 열리기 때문에 이 외교 소모전이 금년으로 끝나리란 전망은 서지 않는다.
서남아 외교사절단이 순방한「네팔」과「버마」에는 지난 4월 북괴의 김경련 재무상과 강량욱 부주석이 사절단을 이끌고 왔으며「라오스」에는 우리가 가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서둘러 김대봉 부외상 일행이 며칠 앞서 다녀갔다.
「싱가포르」와 태국에는 북괴무역사절단이 지나갔다. 사절단 활동뿐 아니라 남북공관의 외교전도 치열하다. 북괴는 대체로 우리에 비해 공관원 숫자가 훨씬 많다. 「네팔」은 3대19「버마」는 5대9, 「싱가포르」도 5대9. 북괴공관의 활동은 일반외교활동 외에 소위「인민외교」라 해서 주재국 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친선협회구성, 공산주의자 지원에 치중한다.
요즘도 일간·주간지를 통한 김일성과 북한공산주의 선전광고가 계속 나온다. 또 김일성 연설문도 매년 1백종 이상의 선전책자를 발행, 배포하고 있다.
다만 차차 주재국에서 김일성 위주의 선전을 좋아하지 않는 움직임이 있어「싱가포르」에선 금년 들어 낸 8회의 광고가 작년까지와는 약간 내용이 다르다.
김일성 대형사진과 연설문 위주이던 것이 사진은 없어지고 내용도 김일성 찬양수기로 바뀌었다. 「버마」에서는 그곳 정부가 제3국 비판·정치선전광고를 금지하는 조처를 취해 작년 하반기부터 광고가 사라졌다.
「버마」「싱가포르」에선 재작년부터 신문의 기사 면에서 훨씬 우리측 선전이 잘되고「버마」의 경우「버마」언론사절단이 남북한을 모두 작년에 방문했다.
그 결과 북한에 관한 소개가 미미했던데 비해 우리에 대해선 5개 신문에서 3∼5회씩 호의적인 연재물이 게재되었다. 우리공관도 본부 홍보간행물, 현지공관「불리틴」발행활동이 강화됐으며 무엇보다 현지 언론인들과의 자연스런 접촉이 강점인 것 같다. 아직도 북괴외교관의 활동은 단체행동이어서 부자연스럽고 임기응변의 재량이 적다는 경직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비해선 행동방식이 상당히 유연해지고 있고 특히 태국을 방문했던 사절단은 상대방이 꺼릴 정치문제는 거론조차 않고 듣기 좋은 비료수출·마포수입 등 상담만 하고 갔다.
그들도 차차 외교기술을 익혀 가고 있어 좀더 긴장해야겠다는게 현지 외교관들의 중론이다.
어떻든 남북한의 이런 치열한 외교전은 결과적으로 한민족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을 나쁘게 할 요지가 크다. 「버마」의 한 언론인은『자기들끼리 조용조용히 해결할 문제를 떠들고 다녀서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 이 말은 비단 언론인뿐 아니라 현지 정부관리들의 생각이기도하다. 매년 비슷한 얘기를 양쪽에서 똑같이 듣는데 식상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외교전쟁은 대단한 박모전이다.
사절단 파견비용뿐 아니라 필요이상의 공관증설, 힘겨운 원조제공(북괴는「네팔」에「트랙터」15대 원조)의 짐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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