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윤리|미국서의 현상을 중심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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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반 기업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보호운동·환경보전주의·대기업에 대한 혐악·이익과 착취의 혼동경향과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강화 등이 이런 반 기업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기업은 반윤리적 행위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윤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난센스」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나 기존 기업윤리가 현재 및 장래의 미국사회의 요구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간과되고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이익률이나 거대화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지만 복잡하고 격동적인 현대사회에 상응한 새로운「룰」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모든 기업을 획일적으로 반윤리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이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필요한 것은 기업과 기업비만자가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접근 즉 윤리의 기초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광범한 도덕률은 어느 환경조건에도 적합하는 것이지만 도덕률 실천의 근거인 윤리적 지표는 환경의 변화에 응하여 갱신될 필요가 있다. 기술혁신·다국적 기업의 대두는 새로운 도의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도의의 고양에 대한 요구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사회로부터의 압력과 기업 내부적인 필요 때문에 경영자는 윤리적인 문제에 조직적인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업에 윤리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중상보다 더한 악질일지도 모른다. 사실 기업은 수세기 동안 윤리적 규범의 비옥한 모체가 되어 왔다. 윤리적 바탕이 없는 한 약속어음이 통용되고 전화한통으로 몇 백만「달러」의 거래가 성립 될리 없다.
그러나 기업가 자신들도 그러한 이윤추구가 도의적인 관계라 하는 것은 인식치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기업인보다 오히려 지식 계급에 있다. 기업은 기업활동의 동기나 행위를 보다 분명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일부 기업인의 부도덕적인 행위를 기업인 전체의 그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현재의 경쟁적 시장경제에서 미국의 기업이 올리는 평균이익률은 매상고의 5%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25%이상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기업인이 경쟁적으로 이익률 추구하는 것은 저「코스트」운동으로 나타난다. 기업의 저「코스트」노력은 소비자에 이익이 된다.
만약 기업에 이익추구를 포기토록 한다면 저「코스트」노력도 포기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적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전력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경쟁원리가 고도로 작용하는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윤리규범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낡은 윤리규범이 불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자가 소비자단체 및 정부와 협력하면 새로운 윤리강령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기업조직 내부에 있어서의「콘센서스」가 먼저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윤리적인 기준의 태반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이극간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업체의 이기적인 노력이 가끔 타인에 은혜를 주고 있다. 따라서「다이내믹」하고 자유의 도를 강화하고 있는 사회에 충분히 적응될 수 있는 기업윤리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양면을 반영해야 할 것이며 이는 경영자·정부·소비자의 협력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포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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