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군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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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명훈씨의 「차이코프스키」음악경연대회 2등 입상 소식이 전해진 3일 하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타워·맨션」1505호 그의 집에는 마침 연주회 때문에 일시 귀국한 그의 누나 정경화씨와 어머니 이원숙 여사·아버지 정준채씨(66), 그리고 명철(23)·명규(19)형제 등이 모여 축제기분에 싸여 있었다.
『명훈이가 실력으로는 l등감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입상하고 보니 오히려 놀라와요. 한국의 자랑입니다.』
이원숙 여사는 이 기쁜 소식을 미국에 있는 큰아들과 딸 명화씨(첼리스트)에게 연락하기에 바빴다.
정명훈씨는 바로 지난 6월 3일과 6일, 7일 서울과 대구에서 귀국연주회를 했었는데 모두 이번 경연대회 연주곡목들을 연주했었다.
『명훈이가 「차이코프스키」경연대회에 나갈 결심을 한 것은 벌써 지난가을이었어요. 이번 귀국연주회도 「모스크바」대회에 앞서 한번 고국에서 똑같은 「레퍼터리」로 자기실력을 마지막으로 「테스트」해 본 셈이지요.』지난 70년 제4회 대회에 초청을 받았던 정경화씨는 동생이 『두 누나가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을 실현시켜주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명훈씨 댁은 이미 국내외에 잘 알려진 『음악가족』. 4남 3녀 중에서 명훈씨는 3남이며 위로 큰누나 명소씨(미 거주)는 「플룻」을, 2녀인 명화씨는 「첼로」, 그리고 경화씨는 「바이얼린」을 전공, 이미 모두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연주가로 성장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음악제로 해서 이 가족은 여러번 화제에 올랐었다. 66년 제3회 때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게오르그·피아티코르스키」씨가 『정명화가 「모스크바」에 가면 틀림없이 1등을 할 수 있다』면서 한국정부에 여권발급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결국 허가를 받지 못했으며 70년 제4회 대회 때는 정경화씨가 참가초청을 받았으나 역시 한국인이라는 문제로 「모스크바」행을 포기했었다.
『이 대회는 소련 정부가 특히 입상자들에게 파격적인 뒷받침을 해 주는 것으로 음악인들 사이에선 누구나 참가해 보고 싶은 「콩쿠르」입니다. 그래서 이미 명성을 얻고 있는 소련의 「아쉬게나치」같은 「피아니스트」도 여기에 출전하여 1등을 (2회 때) 했었지요.』 경화씨는 앞으로 동생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대성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정명훈씨는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 7세 때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여 「어린 음악가」로 호평을 받을 정도로 빨리 성장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겐 모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시켜 보았는데 처음부터 「피아노」에 재미를 느껴 계속 한 아이는 명훈이 뿐이었어요.』 이여사는 어린 나이에 새벽부터 「피아노」앞으로 달려가던 명훈군이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말한다.
정명훈씨는 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메니스」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5년 전부터는 지휘공부를 아울러 하고 있다. 그 동안 그는 미국의 유명한 「뉴요크·타임스」주최 WQXR「콩쿠르」에 1등을 한 것을 비롯하여 (70년) 73년엔 「뮌GPS」국제음악「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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